부흥백제국의 성립과 정치적 변동-복신의 정국 주도와 풍왕의 대응을 중심으로 -
Establishment and Political Changes of Reconstructed Baekje: Focused on Boksin‘s Leading a Political Situation and King Pung's Responding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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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백제 부흥세력은 국가의 정통성 확보를 위한 구심점으로써 豊璋의 귀국을 요청하였다. 이에 풍장의 서기 661년 9월 말에 倭國을 출발하여 12월에 백제 땅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 사이 부흥세력 내부에서는 福信이 道琛을 제거하는 정치 변동이 일어나 버렸다. 따라서 풍장은 돌아왔지만 정치 상황이 180도로 변한 상태여서 왕위 계승마저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간신히 복신과 타협하여 서기 662년 5월에 즉위하였지만 실권 없는 허수아비 처지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새로 권력을 잡은 복신도 외부의 충격에 휘둘렸다. 백제는 서기 662년 7월에 지라성・윤성・대산책・사정책・진현성을, 이어 8월에 내사지성마저 나・당군에게 빼앗김으로써 금강 이동의 전략적 거점을 대부분 상실하였다. 이에 복신은 서기 662년 12월에 피성(김제) 천도로 정치적 동요를 차단하여 했지만 이듬해 2월에 다시 거열성(거창)・거물성・사평성 등 남방 주요 거점과 백제 5방 중의 하나인 덕안성(논산)까지 빼앗겨 수도의 안정성마저 위협받자 다시 주류성(부안)으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성 천도라는 정치적 승부수가 실패하자 굳건하던 복신의 입지에 이상이 생겼다. 이 틈에 풍왕이 군사적인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하였고, 그 자신이 ‘복신의 죄’를 정식 거론할 정도로 세력도 확산되어 마침내 서기 663년 6월 복신을 제거하기에 이른다. 결국, 풍왕과 복신의 불화는 친위정변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당시는 내부 다툼에 빠져도 괜찮은 상황이 아니었다. 비록 풍왕은 적통 왕으로써의 권위를 회복하였지 몰라도 백제는 당 주둔군과 신라의 공세에 대항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갖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Abstract
The reconstruction forces of Baekje asked Pung-Jang to return to the homeland as the pivot for securing Baekje dynasty’s legitimacy. Pung-Jang left Wae (Japan) in September 661, and arrived in Baekje in December. During that time, however, there was some political changes within the reconstruction forces--Boksin eliminated Dochim. Thus, he return seemed in vain. His succession to the throne was threatened because of the political upheaval. He managed to compromise with Boksin, and succeeded the throne in May 662, but he remained as a nominal king without real power. However, Boksin, though he seized the power, was embroiled in the political chaos. Baekje lost most key military bases by Shilla-Tang Combined Forces such as Jira-fortress, Yun-fortress, Deasan-stockade, Sajeong-stockade, and Jinhyeong-fortress in July 662 and Neasaji-fortress as well in August. At this, Boksin sought to settle the political disturbance by the capital to Pi-fortress (Gimje) in December 662. In February 663, however, he lost the key bases in the south such as Geoyeol-fortress, Geomul-fortress, Sapyeong, and also Deokan-fortress, one of the Five-Bangs. He was forced to retreat to Juryu-fortress(Buan) as the new capital was threatened. As the political maneuver to move the capital city to Pi Fortress failed, Boksin power was weakened. Taking the opportunity, King Pung began involving in the military affairs and strengthened his political power to the extent to raise a formal issue of ‘Boksin’s sin’. Finally, he could remove Boksin in June 663. In the end, the discord between King Pung and Boksin come to an end by a political revolt. But it was not a peaceful period to be engaged in the internecine struggles. King Pung managed to restore his legitimacy as king, but he didn't have enough time to fight against the Shilla-Tang Combined Fo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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