遼河유역의 高句麗千里長城
The Great Wall of Goguryeo in Liao-River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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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고구려가 당의 침입에 대비하여 631년(영류왕14)부터 646년(보장왕5)까지 총 16년에 걸쳐 축조한 천리장성에 관한 것이다. 고구려 천리장성에 대한 연구는 관련기록이 소략한 까닭에 크게 山城聯防線說(산성연방선설), 山城防禦組群說(산성방어조군설), 邊崗說(변강설) 등의 논란이 있어 왔지만, 기존 연구 성과들을 검토한 결과 산성연방선설과 산성방어조군설은 성립하기 어려움을 확인하였다. 변강설 역시 아직까지 변강 유적에서 고구려 천리장성으로 판명될만한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지만, ① 그 위치가 요하를 도하하는 적을 방어하기에 용이하다는 점, ② 요동 지역에 축조된 다른 왕조들의 장성과 구분이 가능하다는 점, ③ 주행방향과 길이가 천리장성 관련기록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정황상 고구려 천리장성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 천리장성 관련 자료를 검토한 뒤 수·당의 고구려 침입경로를 비교하였다. 수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고구려가 대당 전쟁을 앞두고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교 결과, 천리장성이라고 명시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지만 요하를 도하하는 당의 침입 경로가 다양해질 뿐만 아니라 요하 주변에서 고구려를 기만하는 군사행동을 보이고 있다. 당이 보여주는 이러한 전략의 변화는 요하 연안에 축조된 고구려 천리장성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최근 중국 학계에 의하여 실시된 변강에 대한 조사 자료를 검토하였다. 그 결과, 변강 유적은 길림성∼요녕성까지 동일한 판축기법으로 축조되었으며, 동북에서 서남으로 약 1천여 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헌기록과도 일치한다. 마지막으로 『봉천통지』에 수록된 변강 관련기록을 분석해 본 결과 변강 유적 근처에서 ‘고려성’, ‘고려태’, ‘봉화대’ 등으로 불리는 규모가 작은 고성유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의 결과들을 종합하여 본 결과 고구려는 요하 동안에 새로운 토축의 장성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는 천리장성이라는 새로운 보조방어선을 축조함으로써 기존에 유지되어 오던 방어체계를 보완하고자 하였다. 장성의 축조함으로써 당군의 기동력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요하 도하를 지연시킴으로써 전투태세를 갖출 시간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focuses on the Great Wall of Goguryeo that had been estimately constructed during the reigns of King Yeongryu to King Bojang for 16 years(631∼646). Due to the lack of related historical records, there have been three assumable theories about the Great Wall of Gogureyo, namely Sanseong-yeonbangseol(山城聯防線說) which assumption is the connected wall with the established wall in the past, Sanseong-bangeojogool(山城防禦組群說), and Byeongang(邊崗說). Reviewing the old documentary records and the archaeological data to examine the existing studies, it came to the conclusion that the two former theories are not valid. Although the remains of the Great Wall of Goguryeo haven't been found, there are several reasons to prove the reliability of Byeongang theory. Firstly, the position of Byeongang was easy to prevent enemies crossing the Liao-River. Secondly, the position of Goguryeo's Great Wall was not overlapped in Liao-Dong, in which the great walls of other dynasties were built. Thirdly, The Direction and length of the Great Wall is consistent with the relevant records. Based on the result of the research, in this study, I compared the invasion route of Sui and Tang dynasties before and after the Great Wall of Goguryeo was built. The reason why I compared these two dynasties's invasion route is that there found in the historical records the fact that Goguryo built the Great wall after its successive defence from Sui's attack. After the comparison, I found that Tang's invasion pathways to Goguryo became diversified and Tang's army changed their tactics after building the Great wall. Next, this study also analyzed Chinese archaeological data and documentary records about Byeongang. The result confirmed that the construction technique of Byeongang site stretching a thousand li from the northeast to the southwest, was the same one so called, "Pancheck" which piled up the several earthen panel one by one, from Killim province to Yonyeong province. Finally, I confirmed the fact that Byeongang site was mentioned in 『Bongcheontongji』 called as ‘Goguryeo Castle’, ‘Goguryeo Tae’, ‘beacon’., small the site of an ancient castle after analysing of the related old records. Thus, it is certain that the Great Wall played the role of an auxiliary line in the existing defense system of Goguryeo. The purpose of building the Great Wall is presumed to guarantee the time for the rear's preparation and to inform the position as well as the condition of enemy troops to the existing defense system, the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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