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ㆍ몽고 연합군의 진도 삼별초 공략 과정 검토
A Study of the Process of Attacks by the Goryeo-Mongolia Combined Fo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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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려와 몽고는 적대관계를 청산하며 전쟁을 끝내는 듯 했으나 연합군을 형성하여 새로운 전쟁을 벌였다. 그런데 그 대상이 대 몽고전의 선봉에 섰던 삼별초였다. 원래 고려는 무신 집권자가 국정을 장악한 시기에 몽고와 전쟁을 하였다. 마지막 무신 집권자가 1270년 5월에 제거되며 무신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에 고려 원종은 몽고와의 전쟁을 끝내려고 원 도읍인 개경으로 돌아갔다. 이를 반발한 삼별초는 1270년 6월에 배중손을 중심으로 거사하였다. 삼별초는 험한 물살을 가진 명량을 방패삼아 진도에서 대 몽고 항전을 이어 나갔다. 원종은 김방경을 지휘관으로 정하고 몽고와 연합군을 형성하여 진도를 공략하고자 하였다. 김방경은 전함(戰艦)ㆍ병기(兵器)ㆍ군량(軍糧) 등을 중심으로 공략 준비를 갖추었다. 연합군은 실패 끝에 제5차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새로운 묘수를 수립한 연합군은 1271년 5월 15일에 출진하였다. 일단, 연합군의 전함은 육지 해남 삼견원(삼지원)에서 이전에 실패한 단선공격(單線攻擊)처럼 한꺼번에 움직였다. 이어서 연합군은 명량을 건너 진도 벽파진으로 향할 때는 삼선(三線)으로 나뉘어 쳐들어갔다. 마침내 제5차 전투는 삼선공격전투(三線攻擊戰鬪)라는 묘수를 적용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무엇보다도 김방경을 끝까지 믿은 원종의 선택이 승리의 으뜸 요인이었다.
Abstract
Goryeo and Mongolia seemed to end decades of hostility and war, but they formed an alliance to wage a new war. The target for attacks was the Sambyeolcho, the vanguard of the anti-Mongolian struggle. Goryeo had originally been at war against the Mongolians during the military regime. The killing of the last military ruler in May 1270 marked the end of the Goryeo military regime. King Wonjong of Goryeo thereupon returned to Gaegyeong, the original capital of Goryeo, which meant bringing to an end the war against the Mongols. This provoked backlash from the Sambyeolcho, which, with Bae Jung-son as the central figure, staged a rebellion in June 1270. Using Myeongnyang — an area notorious for its raging currents— as a shield, the Sambyeolcho stationed in Jindo continued to struggle against the Mongols. In order to carry out attacks on Jindo, Wonjong appointed Kim Bang-kyung as commander and allied with the Mongols. Kim Bang-kyung had been in readiness for warships, weapons, and provisions. After a few failed attempts, the joint forces engaged in the fifth-round combat with the Sambyeolcho. The allied forces, having devised an ingenious scheme, went into battle on the 15th of May 1271. The allied warships going to war at Samjiwon, Haenam was characterized by maneuvering simultaneously — just like they used to in an attempt to make single-track attacks that ended in failure. When crossing Myeongnyang to head toward Byeokpajin, the combined forces launched three-pronged attacks. The fifth round of battle ended in victory for the Goryeo-Mongolian allied forces whose ingenious tactic — called a three-pronged attack — worked brilliantly. Above all, the most critical factor behind the allied forces’ victory was King Wonjong’s unbending trust in Kim Bang-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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