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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悳奎의 『朝鮮史』에 나타난 한국사 인식

Gwon, Deok-Gew understanding on Korean history on the his book, Chosu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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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해방 후 간행된 권덕규의 『朝鮮史』에 나타난 그의 한국사 인식에 주목하였다. 먼저 해방 이전 일제하에서 권덕규의 업적을 살펴보았다. 권덕규는 국어와 국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민족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그에 관한 많은 글과 책을 출간하였고, 학생들과 대중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해방 후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역사서의 간행이 많아졌다. 『朝鮮史』도 그 중의 하나로, 권덕규가 일제하에서 발행한 『朝鮮留記』(上)ㆍ(中)권을 합하여 수정한 것이다. 『朝鮮史』는 한국사의 체계를 단군을 기원으로 하여 부여-고구려-발해를 중심으로 보았다. 그리고 당시 유행하였던 문화주의 사관을 수용하여 중고사와 근세사를 서술하여 통사를 저술하였다. 이는 당시 1920년대 전반의 분위기이기도 했다. 朝鮮史』에 나타난 그의 한국사 인식은 크게 한국사 체계와 민족주의 사관으로 나눌 수 있었다. 먼저 그는 한국사의 시작을 단군으로 보고 부여-고구려-발해로 정통성이 이어진다고 보았다. 또한 고대의 한국사 범위를 한반도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만주와 중국내륙, 일본으로 확장하였다. 그리고 숙신ㆍ말갈ㆍ여진 등을 모두 단군의 후손으로 정리하여 민족의 범주를 넓혔다. 이렇게 권덕규는 민족과 영역의 범위를 넓혀서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조선 민족에게 우월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고 하였다. 『朝鮮史』에 나타난 그의 민족주의 의식을 세 가지로 나누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단군민족주의다. 이는 단군을 중심으로 하여 민족을 결집시키려고 한 것으로, 단군을 민족의 공동시조로 간주하며 단군의 자손이라는 인식에 토대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朝鮮史』는 특히 종족과 종교를 단군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둘째, 고대문자기원설이다. 이는 한글이 고대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를 체계화 시켰다는 주장으로권덕규가 국어학자라는 특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셋째는 문화민족주의 사관이다. 일제의 식민 통치로 당대 조선이 정치적으로 독립하지 못하자 권덕규는 조선이 우수한 문화를 지니고 왔다고 서술하여 자긍심을 갖도록 하였다. 특히 고대시대에서 우리 민족이 중국과 일본보다 우월한 문화 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내세웠다. 해방 후 사회는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을 굳게 지키고 번영된 통일조국을 만들기 위해서 민족의 결속을 다져야 했다. 『朝鮮史』는 이러한 해방 직후의 분위기를 수용하여 조선 민족에 대해 더 월등한 서술을 추가하였고, 이를 통하여 민족의 결속을 가다듬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권덕규는 국어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전문적인 역사 연구를 바탕으로 『朝鮮史』를 저술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당대의 다양한 역사 인식을 수용하였고, 해방 후 민족의식이 높아진 상황 속에서 역사교육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analyzes the contents of Chosunsa with focusing on the view of Korean history, which was published after the Korean liberation from Japanese imperialism.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it describes Gwon’s achievement during the time when Korea was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He was very concerned about Korean language and history. He wrote about Korean history and language substantially and he tried to arouse national consciousness to the mass of people because he believed that protecting Korean language and history is the most important thing for keeping our national consciousness. After Korea was freed from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in 1945, people showed more interest in Korean history. As a result, a lot of Korean history books were published and Chosunsa was one of them. The book Chosunsa integrated Chosunyugi volume one and volume two. It describes the history system of Korea as the succession from Dangun to Buyeo and Goguryo and Balhae. Also he wrote on everything about Korean history which includes Korea and Chosun, embracing the culturism in 1920s. Chosunsa’s view on Korean history can be classified in two ways; the system of Korean history and its historical awareness of nationalism. First, Gwon believed that the Dangun era is the beginning of Korean history and it led to Buyeo, Goguryo and Balhae. Also he expanded the Korean ancient territory to Manchu, China and Japan. In addition, he placed Sushen, Malgal, Jurchen under the Dangun’s descendant. In this way, Chosunsa instilled national consciousness to Korean people who suffered from Japanese imperialism. Awareness of nationalism on Chosunsa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ly, it is Dangun-nationalism. Gwon tried to preserve the national identity and pursued the Korean’s national integration upon the belief that Dangun(檀君) was the Korean's common ancestor. Secondly, he found out that Hangul, the Korean alphabet had already existed from the ancient times. This opinion shows that Gwon was a Korean linguists and had much interest in Korean alphabet. Thirdly, Gwon focused on Cultural Nationalism. Under the Japanese colonialism in which the sovereignty of Korea was deprived, he insisted that ancient Chosun's culture was superior to Chinese and Japanese cultures during the ancient times. This shows that Gwon had much pride in ancient Korean cultures. After the Korea was freed from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Korean society had to bind nations together for unifying prosperous nation. Gwon's Chosunsa helped to unite the Korean race, by adding description about predominant Korean people. But, Gwon did not study history professionally, because he was more interested in ancient Korean linguistics than Korea history. Despite his amateur like studying, he accepted the various concepts of history of the time. Furthermore, it is meaningful that we can found out how Chosunsa has contributed in educating national history to people after the Korean has released from Japanese 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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