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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후반 기독교 담론의 형성과 ‘기독청년’의 탄생-동경기독교청년회를 중심으로

1910年代後半キリスト教談論の形成と基督青年の誕生-東京朝鮮基督教青年会を中心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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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의 목적은 동경 조선기독교청년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1910년대 기독교 담론의 흐름과 ‘기독청년’의 탄생 배경을 살피는 데 있다. 1910년대 중반 「학지광」에서 시작된 기독교 담론은「기독청년」의 창간과 함께 구체화 되었다. 동경 유학생 사회의 구성원들은 민족 개혁을 위한 통일한 사상을 찾는 데 노력을 기울였고 기독교는 그에 적합한 사상으로 이해된다. 이 시기의 기독교 담론은 2·8독립선언에 이르는 주요한 사상사적 논의가 된다. 하지만 이광수를 비롯한「기독청년」의 비판적 필자들은 부형 세대 교역자들과 일부 기독교 청년회의 회원들이 미신화된 신앙에 빠져 있으며 근대과학과 시대사조에 무지함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았다. 기독교가 민족 개혁의 통일 사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이를 신앙의 타락으로 규정하는 보수적인 필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적극적으로 동조하거나 부분적 수용 의사를 밝혔다. 기독교 청년회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기독청년’이 그 과제를 해결할 주체로 선택된다. ‘기독청년’은 황성기독교청년회의 설립과 함께 이미 이전 시기에 탄생한 용어이다. 하지만 기독교 담론이 최고조에 이르던 1910년대 후반에는 단순히 기독교 청년회의 회원을 지칭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독청년’은 기독교 청년회의 일반 목적인 지덕체의 완전한 발달을 이룬 인물로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과학(신학문)을 수양한 신체 건강한 청년으로 요약된다. 민족 개혁과 기독교 사회화를 이룰 주체이자 동경 유학생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권장된 청년 이상향이었다. 1910년대 기독교 담론의 비판적인 필자들 중 일부는 2·8독립선언 이후 사회주의로의 전향을 시도한다. 이들은 기독교 청년회의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한 회의를 깊게 드러낸다. 생산된 담론과는 별개로 그것이 텍스트의 영역을 벗어나 실제로 구현되는 데는 실패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 동경 유학생 사회에서는 기독교 담론이 축소되고 그 자리를 사회주의 사상이 대체해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동경 조선기독교청년회는 1920년대에도 여전히 「현대」, 「젊은이」, 「사명」 등의 기관지를 순차적으로 발행하며 여전히 기독교 담론 생산과 수용의 담당기관으로 있었다. 이를 통해 1920년대 기독교와 사회주의와의 길항 역시 탐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Abstract

この論文の目的は東京朝鮮キリスト教青年会を中心に起きた1910年代キリスト教談論の流れと‘基督青年’の誕生背景を察するのにある. 1910年代中盤『学之光』で始まったキリスト教談論は『基督青年』の創刊とともに具体化になった. 東京留学生社会の構成員たちは民族改革のための統一した思想を捜すことに努力を傾けたしキリスト教はそれに相応しい思想に呼名された. この時期のキリスト教談論は2・8独立宣言に至る主な思想史蹟論議になる. しかし李光洙を含めた『基督青年』の批判的筆者たちはお父さん世代と一部キリスト教青年会の会員たちが迷信化された信仰に抜けているし近代科学科時代思潮に無知さを持続的に問題視した. キリスト教が民族改革の統一思想に機能するためには‘キリスト教社会化’が必要だということがその核心だった. これを信仰の堕落で規定する保守的な筆者もいたが大部分は積極的に同調するとか部分的収容意思を明らかにした. キリスト教青年会に対する批判と自省の声が高くなる中に ‘基督青年’がその課題を解決する主体になる. ‘基督青年’は皇城キリスト教青年会の設立とともにもう誕生した用語だ. しかしキリスト教談論が最高潮に至った1910年代後半には単純にキリスト教青年会の会員を指称するのに止めない. ‘基督青年’はキリスト教青年会の一般目的な智・徳・体の完全な発達を成した人物だ. キリスト教信仰を土台で科学(新学問)を修養した身体元気な青年だ. 民族改革とキリスト教社会化を成す主体で, 東京留学生社会の構成員皆に勧奨された青年理想郷だった. このように青年世代が自らを改革主体で呼び出すようになったことは上世代との感情が激化されたからだ. お父さん世代は批判と同情の対象だった. 1910年代キリスト教談論の批判的な筆者たちの中で一部は2・8独立宣言以後社会主義への転向を試みる. キリスト教青年会の役割と存在理由に対する会懷疑を深く現わす. 生産された談論とは別個でそれがテキストの領域を脱して実際に具現されることに失敗したと思うようになったのだ. 1920年代に立ち入ると東京留学生社会ではキリスト教談論が縮まってその席を社会主義思想が取り替えて行き始める. しかし東京朝鮮キリスト教青年会は1920年代にも相変らず「現代」·「使命」などの機関紙を発行した. これを通じて1920年代キリスト教と社会主義との拮抗も摸索することができると期待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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