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가 김관과 식민지 근대 ‘음악’의 의미(1)
Music critic Kim Gwan and the meaning of ‘music’ in modern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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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김관은 한국 최초의 음악평론가로 식민지 근대 악단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당시 연주 중심의 악단을 비판하고 전문적인 비평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음악평론’의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비평관을 바탕으로 다수의 음악평론을 발표했으며, 음악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음악교육에도 앞장섰던 음악 전문인이었다. 또한 김관은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 연극, 영화, 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상당한 양의 글을 발표한 선구적인 지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아직 해명되지 않은 그의 전기적 사실과 구체적인 삶의 일면, 즉 김관의 문단과의 교류와 음악다방 엘리자의 운영,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했던 이력들을 추적하여 실증적으로 그의 생애를 밝혔다. 김관은 당시 신문과 잡지 등 주요 매체에 상당한 양의 글을 발표하였고, 넓은 범위의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음악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김관이 경영했던 ‘엘리자’는 당시 여러 매체에 소개될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자오선 동인들의 모임의 장(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관은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문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본고는 새롭게 발굴한 김관의 글과 음악평론을 중심으로 그가 개진한 음악이론과 식민지 근대라는 시기에 형성되었던 ‘음악’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였다. 김관은 식민지 근대 왕성한 활동을 하며 조선의 악단뿐만 아니라 예술계를 이끌어갔던 선구적인 음악평론가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는 한국의 제1호 음악평론가로 활동했던 김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발판을 마련하는 일이자, 문학과 음악의 접점을 살피고자 하는 이후 연구의 출발점이라는 데 의의를 갖는다.
Abstract
Kim Gwan is the first Korean music critic, and he played a critical role in forming the colonial era’s modern band, and we can define him as a man who pioneered the field of ‘music critique’ by emphasizing the necessity of specialized criticism. He proposed many music critiques based on specialized view of criticism which was rare at that time, and he was a music professional who led music education such as founding music laboratory. Kim Gwan is also a pioneering intellect who published many writings as working actively in various fields of not only music but also literature, play, movie, and broadcasting. This essay clarified his life by tracing back his biographical facts and parts of his specific life, which is Kim Gwan’s exchange of works, management of music acfe ‘Eliza’, and his career history as ‘Meridian’ agent. Kim Gwan published considerable writings to main media such as newspaper and megazine, and he was an active musician in wide area. Also ‘Eliza’, managed by Kim Gwan, was very popular so that it was introduced in many media, and it was a meeting place for ‘Meridian’ agents. Kim Gwan was having close relationship with writers of that time as working as an agent of ‘Meridian’. This essay contemplated about the music theory that he stated and the meaning of ‘music’ that was formed during modern colonial era, based on his newly found writing and music critique. Kim Gwan can be evaluated as a pioneering music critic who led not only Chosun’s band but also the artistic community while working actively in modern colonial times. This study is significant because it establishes a toehold for active study about Kim Gwan who worked as the first Korean music critique, and it is the starting point of later studies that investigates the interface between literature and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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