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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초 붕당론의 변용과 탕평책의 수립

Acculturation of Bungdang theory and the establishment of Tangpyeong policyin early King YeongJo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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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신임옥사와 관련한 경종과 영조에 대한 노‧소론의 서로 다른 의리는 충과 역을 가르는 대시비가 되어 붕당간의 치열한 의리 대결을 불러왔다. 영조의 을사‧정미처분은 노‧소론의 시비명변론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당론과 타협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나, 무신란을 거치면서 편당적 차원의 처분으로는 탕평의 실효를 얻을 수 없음을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영조는 반신반역‧패자역손의 논리를 적용해 노‧소의 의리를 조제하는 기유처분을 단행함으로써 시비명변에 의한 탕평책을 수용하였고, 건극탕평을 지향하는 국왕의 정치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붕당론인 시비명변론은 군주의 정치논리로 변용되어 탕평책에 수용되었으며, 이후 영조는 황극설에 입각해 시비판정 및 처분의 권한을 강화시키면서 시비명변에 의한 탕평책을 수립해나갔다. 신료들의 시비논쟁을 통제한 일련의 조치들과 함께, 황극의 요점에 관한 군신간 합의를 유도하면서 영조는 건극론의 정치적 효용성과 의리명변의 중요성을 보다 명확히 인식해갔다. ‘건극의 주인’으로 붕당간 시비에 개입해 대의와 국시를 확립하는 권한과 위상을 갖게 되었고, 이후 국왕의 의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비명변에 의한 탕평책을 추진해갈 수 있었다.

Abstract

Right after Ulsa Disposition, Noron asserted ‘Tangpyeong after clarifying what is right and wrong’. Compromising with Noron’s faithfulness, King Yeongjo carried out Ulsa Order. However, as Noron attempted to expand subdue rebel to Soron, King Yeongjo carried out Jeongmi reshuffling. At the juncture, Soron’s Lee Kwang-ja also demanded ‘clarifying the distinction’ for ‘the faithful’ and ‘the rebellious’. Then, King Yeongjo made a disposition to deprive Noron’s 4 ministers of their offices and peerage. In his Fourth year of reign, King Yeongjo carried out Giyu Order that mixed the faithfulness of both Noron and Soron. Giyu Order showed ‘Tangpyeong through establishing state law’ or. in other words, the king’s dominance over decision making on ‘right’ and ‘wrong’ and political power of establishing national policy through controlling the faithfulness of a faction. King Yeongjo prohibited the courtiers’ argument on distinction of ‘right’ and ‘wrong’ and emphasized that a king was the only person who had a right and power to judge ‘right’ and ‘wrong’. Therefore, the King Yeongjo diverted ‘the distinction theory between right and wrong’ into a royal political theory and incorporated it in Tangpyeong policy, reinforcing the base for king’ faithfulness amid faction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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