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의 삼수갑산과 償債
Kyeong heo’s walk of life to samsu kabsan and The Repayment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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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鏡虛禪師(1846∼1912), 그는 누구인가? 경허는 구한말 풍운의 조선 땅에 신화처럼 홀연히 나타나 투철한 깨달음으로 꺼져 가는 한국선의 등불을 밝힌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로 평가한다. 경허가 근대 한국선불교를 중흥시킨 인물이며 一大事에 확철대오 했던 진정한 수행자였음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경허의 행리에 있어서는 ‘鴻鵠이 아니면 홍곡의 뜻을 알기 어렵나니, 크게 깨달은 경지가 아니면 어찌 사소한 예절에 얽매이지 않고 대범할 수 있겠는가…’의 강한 긍정과 간간히 세간에서 비쳐드는 빛바랜 어둠의 강한 부정의 양극단이 극명하게 갈리어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마치 경허의 운명처럼 암울하게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경허의 償債이다. 경허는 1903년 초가을 해인사를 떠나 1904년에는 서산 천장암에서 최후의 법문을 마치고 滿空에게 傳法偈를 내린 후 1905년에는 오대산 월정사에서 3개월 동안 화엄경 법문을 한다. 이어 금강산을 유람하고 1906년(61세)에는 안변 석왕사 나한전 개금불사 증명을 끝으로 삼수갑산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경허는 홀연히 떠나 바람처럼 사라진다.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 한다. 이후 甲山·江界 등지에서 머리를 기르고 儒冠을 쓴 모습으로 살았다. 심지어는 朴蘭州로 개명하여 그 곳에서 훈장 선생으로 살다가 1912년 4월 25일 새벽에 마침내 전설처럼 입적한다. 왜 하필 삼수갑산인가? 왜 박난주인가? 비승비속도 선승인가? 하지만 그것이 경허의 상채이다. 그는 그 곳에서 ‘상채’ 즉 ‘還債’를 마친다. 필자는 경허의 삶과 사상, 그리고 문학세계 등을 재조명하여 그동안 왜곡되었던 선사의 정당한 가치를 특히 그의 행리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본다. 특히 필자는 경허의 말년 三水甲山에서의 활동을 償債行, 償債思想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여 경허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다.
Abstract
Kyeong Heo, Who is he? Just he suddenly appeared like a myth in The Joseon dynasty lately. Then, Kyeong Heo finded a great enlightenment. and he reestablished the korean buddhism from the extinction of korean buddhism. So he was appraised as ‘The great Seon Master of modern seon buddhism’. However, He was evaluated the two extremes in opinion. Thorough understanding of enlightenment and various his action. Especially, Kyeong Heo appreciated by extremes of light and darkness because of his an incredible story. but, in short, This is just repayment(償債). in other word, It represent ‘pay a debt(環債)’. In addition,This is show punishment(報怨行) of himself. In the last life, Kyeong Heo leave for Samsu Kabsan. there he let his hair grow long. and, wore Confucianism hat(儒冠). finally, he changed his name as Park Nan Ju(朴蘭州). He lived in Kanggye(江界)with teaching the children. and, leaved there and reached Kapsan(甲山). Of course Kyeong Heo passed his last life in Kapsan (甲山). in the end, Kyeong Heo finished his Repayment(償債). It is naatural that he acted his Punishment(報怨行). in this place He had been lonely Seon Master. more over, he had been wanderer. There Only Kyeong Heo had melted his long karma. Finally, as the legend, April 25, 1912, at dawn. At last, Kyeong Heo passed away with of Nibbana. This is destiny. This is repayment. This is punishment. It is a law of nature. we should understand ‘Kyeong Heo’ examination through The Repayment(償債) Thought during the Samsu-Kabsan. So, We should correct misconstruction about Kyeong Heo. And, I think we should constantly study Kyeong Hoe's life, thought, and the literar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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