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의 장편시 「輓趙淑人」에 대하여
About Yeonam's Long Poem 「Manjosookin輓趙淑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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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만조숙인」은 연암이 1771년 10월에 연암의 친구였던 홍낙임(1741~1801)의 부인의 죽음을 애도해 지은 것이다. 조숙인은 연암의 부친상에 소중히 관리해오던 가체를 전당잡혀 飯含에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였고, 연암은 이에 대한 보은으로 직접 누에를 쳐서 비단을 짜고 오색실로 그녀의 얼굴을 수놓아 장수를 기원하고자 하였다. 이 시의 주제는 연암의 부친상에서 보여준 조숙인의 의로운 행위이다. 연암은 남성 우위의 조선사회에서 ‘하찮은’ 존재로만 인식되었던 여성의 의로운 행위야말로 결코 ‘하찮지 않은’ 가치가 있음을 드러내려 하였다. 따라서 이 시는 같은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방경각외전』에 수록된 여러 전들 못지않은 현실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암을 비롯한 그의 집안은 신임의리에 관한 한 매우 준엄한 입장이었다. 이와 같은 연암의 정치의리는 당시 영조의 탕평책에 적극 호응하여 권력을 장악한 외척 세력과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만조숙인」이 지어진 때는 풍산 홍씨와 경주 김씨의 외척 세력들이 혼인 관계와 경제적 지원을 통해 촉망 받던 선비들을 자파로 끌어들이고 있던 시기였다. 연암은 이와 같은 외척 세력의 권력 투쟁에 희생되는 것을 우려하고, 당시 많은 사람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외척 세력의 핵심이었던 홍낙임의 부인상을 애도하는 시를 지은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홍낙임과 그의 부인이 보여준 호의를 외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연암은 자신이 지은 장편 고체시인 「증좌소산인」, 「만조숙인」, 「수산해도가」, 「총석정관일출」 4수를 묶어 놓고 『중향성창수』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런데 연암의 아들 박종채는 『연암집』을 편찬하기 위해 연암시를 모아 놓은 『연암집초고보유 9』에 「만조숙인」을 수록하지 않았다. 홍낙임은 정조가 승하한 후 권력을 잡은 경주 김씨 세력에 의해 정치적 희생양이 되었는데, 정순왕후의 죽음으로 이들이 실세한 이후에도 홍낙임의 처리를 놓고 정치권에서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박종채는 이와 같은 때에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 내용과 주제를 담고 있는 「만조숙인」에 의해 초래될 수 있는 집안의 우환을 고려해 이를 『연암집』에서 제외시키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Abstract
「Manjosookin(輓趙淑人)」 is the poem composed by Yeonam(燕巖) in October, 1771 to mourn the death of the wife of his friend, Hong Rakim(洪樂任, 1741~1801). She made the money by pawning her Gachue(加髢) and bought necessary things for Banham(飯含) with it and offered them to Yeonam for his father's funeral, and with gratitude for her kindness he planned to pray for her longevity by raising silkworms, weaving silk stuff, making five cardinal colored silk thread, and winding them on an old jade. The theme of this poem is Cho's kindness on his father's funeral. Yeonam wanted to show the woman's deed was "not worthless" especially in the male chauvinism society of Chosun(朝鮮) where the woman was regarded such a "worthless" existence. Therefore, this poem has no less realistic meaning than the poems which contains the same theme consciousness in Bangkyunggakyijun(放璚閣外傳). Yeonam and his family had very strict stands about Sinim申壬 Loyalty. The political faith of his was opposed to that of the royal relatives by marriage who had come into power by participating ardently in a fair personnel management by Youngjo(英祖). The time when 「Manjosookin」 was composed, Poongsan(豊山) Hong(洪) family and Kyoungjoo(慶州) Kim(金) family, two of the most powerful royal families by marriage were willing to entangled the promising literary men in their groups through economic support. Yeonam felt anxiety to be sacrificed by their power struggle, and didn't took the government service examination in spite of many people's persuasion. Although he considered Hong Rakim as the core person of the power he couldn't turn his face away from both Hong Rakim and his wife because of the kindness they showed him when he was in economic difficulties, and composed the lamentation for the death of Hong Rakim's wife in return. Yeonam bound the four long old archaic style poems, 「Jungjoasosanin(贈左蘇山人)」, 「Manjosookin」, 「Chongsukjunggoanilchool(叢石亭觀日出)」, 「Soo- sanhaedoga(搜山海圖歌)」 into a book and entitled it Goonghyangsung(重香城唱酬). However, his son, Park Jongchae朴宗采 excluded 「Manjosookin」 when he edited Yeonamgipchogoboyou 9(燕巖集草稿補遺 九) with his father's works, as an advance preparation to publish Yeonamgip(燕巖集), After Jungjo(正祖)'s death, Hong Rakim became the political victim by the power of Kim family, and even after losing their power because of the death of queen consort Jungsoon(貞純), they reacted very sensibly about Hong Rakim’s disposal. Park Jongchae would except 「Manjosookin」 from Yeonamgip, considering that the poem could cause troubles in his household because it included subjects and contents which jumped over the socially accepted idea in that advers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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