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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國의 유교 지식인 小訥 盧相稷이 걸어간 講學의 길 -紫巖書堂의 記文을 중심으로-

The path of lectures walked by Sonul Roh Sang-jik,a Confucian intellectual in a ruined country -Focusing on the record of JaamSeo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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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본고는 小訥 盧相稷이 평생 추구했던 강학의 길 속에서도 망명으로 인해 강학이 잠시 중단된 1911년과 다시 돌아와 자암서당을 중건하며 강학을 재개했던 1914년에 주목하고, 중건하며 지은 자암서당의 기문들을 통해 노상직이 걸어간 강학의 길을 세부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노상직은 형 노상익을 따라 1911년 12월에 남만주로 망명을 떠났지만, 맏아들 식용의 죽음을 맞닥뜨리며 형의 강력한 권유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와 국내에서의 강학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돌아온 노상직은 자암서당으로 들어오는 다리를 斷塵橋라고 이름하고, 올라오는 입구에 있는 시내를 洗心澗이라고 이름하면서 자암서당을 自靖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리고 변치 않는 바위의 붉은빛에 자신을 투영하여 예전부터 걸었던 강학의 길을 재개하였다. 이를 통해 전통문화를 수호할 뿐만 아니라, 성리학의 핵심 본령인 마음공부를 일상에서 솔선하고 강학과 출판을 통해 성리학의 도를 끊임없이 이어가고자 함을 재천명하였다. 노상직은 자암서당을 중건하며 스스로 기문을 썼을 뿐만 아니라, 국내 자정의 동지인 장석영과 국외 망명의 동지인 이건승에게 기문을 부탁했다. 장석영은 노상직이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으며 전통의 가치를 수호하는 공동체의 공간으로 자암서당을 유지함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리고 노상직의 마음공부에 뜻을 함께하며 그들이 함께 걸었던 강학의 길이 곧 자정의 길임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훗날 파리장서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들의 저항 의식과 연대 의식을 보여주었다. 이건승은 세상의 알아주지 않음을 이겨내고 전통 학문을 고군분투하며 지켜내는 노상직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이건승의 「자암서당기」는 그의 문집 『해경당수초』에 실린 것 외에 자암서당의 현판으로 걸린 현판본 「자암서당기」가 있다. 현판본 「자암서당기」는 爲己之學에 더 집중하는 방향으로 기문이 수정되었다. 위기지학은 결국 마음공부이다. 이는 참혹한 시대에서 세상의 알아주지 않음에서 초탈하여 자기 수양으로 깊숙이 파고들고자 했던, 혹은 파고들 수밖에 없었던 망국의 유교지식인이 걸었던 자존의 길이다. 그들은 광포한 시대를 저항하고 전통의 가치를 보존하고 전수하기 위해 뜻을 함께 한 동지들이었다.

Abstract

This study focuses on 1911 when lectures were temporarily suspended due to Sonul(小訥) Roh Sang-jik(盧相稷)'s exile, and 1914 when he returned to rebuild JaamSeodang(紫巖書堂) and resumed lectures, and examines in detail the path of lectures taken by Roh Sang-jik through the writings of Jaamseodang. Roh Sang-jik left for exile in December 1911 following his brother Roh Sang-ik(盧相益), but he returned with his brother's strong recommendation, judging that teaching activities in his home country were more meaningful than in the barren environment of Nammanju. Returning, Noh Sang-jik named the bridge entering Jaamseodang as Danjin(斷塵) Bridge, and tried to make Jaamseodang a space of Jajung(自靖). In addition, it was intended to continue the study of mind, which is the core spirit of Neo- Confucianism, through lectures and publications. Roh Sang-jik reconstructed Jaamseodang and asked Jang Seok-young(張錫英), a comrade at Jajung in Korea, and Lee Geon-seung(李建昇), a comrade in exile, to write. Jang Seok-young praised Noh Sang-jik for generously giving up his property and making Jaamseodang a community space that protects the values of tradition. He also shared the will of Noh Sang-jik to study the mind and emphasized that the path of their lectures is the path of Jajung. And they later showed their sense of resistance and solidarity by actively participating in the Parijangseo(巴里長書) movement. Lee Geon-seung gave encouragement and support to Noh Sang-jik, who overcame the world he did not recognize and struggled to protect traditional studies. However, in the Hyeonpan(懸板) version of Jaamseodanggi, the writing was revised to focus more on Wigijihak(爲己之學). At the end of the day, Wigijihak is mind study. This is the path of self-esteem taken by Confucian intellectuals of the ruined country who wanted to dig deep into self-discipline or had no choice but to dig deep from the ignorance of the world in the harrowing times. They were comrades who worked together to resist the violent times and pass on the value of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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