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불교 사장(社長)의 성격에 관한 일고(一考)
An Essay on Buddhist Sajang (社長)in the Early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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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 세종 30년(1448) 처음 등장하는 불교의 사장(社長)은 민간주도 내지 교민(敎民)합동의 특징을 지닌 고려시대 향도(香徒)의 성격을 계승하며, 반승반속(半僧半俗)/비승비속(非僧非俗)의 측면에서 고려시대 수원승도(隨院僧徒)의 이미지도 아우른다. 조선시대에 들어 기존의 향도가 점차 향촌 중심의 두레집단으로 변화되어 간 것에 대한 대응으로 사장은 그 고려적 특성을 유지하며 종교공동체로서의 성격을 담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선 초 공적 업무영역에 대한 기능직 승려들의 적극적인 참여나 연화승들의 활발한 모연활동은, 승단 내의 정식 수계승(受戒僧) 뿐 아니라 사찰에 인위적으로 종속되어 주로 노역 등의 업무에 투입되었던 기존 수원승도 중 일부 유능한 인사도 공공업무나 모연활동 등에 참가했을 가능성을 노정한다. 이렇게 능력이 검증된 수원승도 일부나 환속승려 등을 중심으로 고려시대의 향도보다 한층 세련된 불교신행 공동체가 조직되었으며, 이 공동체의 우두머리 또는 공동체 전체가 차차 사장으로 개념화되고 그 이미지 역시 새롭게 형성되어 갔던 것이다. 이들은 조선 전기 민간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친 종교적 카리스마 세력으로 성장한다.
Abstract
The term sajang 社長 first appear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specifically in the 30th year (1448) of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4th king of Joseon). At that time, it had two meanings: one was the manager of an official grain-warehouse called sachang 社倉 in provinces, and the other was a kind of Buddhist communit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meanings has not yet been revealed, but this research suggests the possibility that the two meanings are connected. The sajang as a Buddhist community seems to have inherited the hyangdo 香徒 institution of Goryeo, an association of Buddhist priests and laypersons, as well as the suwon seungdo 隨院僧徒, a group of lowly monks belonging to temples where they performed a variety of chores with strong lay characteristics. While the hyangdo had changed to merely a local community organization in Joseon, the sajang can be regarded as a continuation of the “religious community” aspect of the Goryeo hyangdo. Also, it is possible to presume that the yeonhwaseung 緣化僧 were connected with the sajang. The yeonhwaseung was a kind of technical monk (jingneungseung 職能僧) who was supposed to collect funds for a variety of Buddhist affairs. Moreover, other technical monks working in the official bureaucracy or able persons of the suwon seungdo class could take some roles in the sajang community. The sajang would have grown into a significant, charismatic religious community that influenced th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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