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기 臺灣人의 중국 진출 유형과 그 삶
日治時期台灣人進出中國的方式和生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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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일제시기 대만인의 조국 인식 즉 그 정체성의 일면을 이해하기 위한 선행 작업으로서 식민지 대만인의 다양한 중국 경험을 파악해보고자 한 연구이다. 이를 위해 먼저 대만인의 중국 진출동기와 유형을 지역별로 정리한 다음, 대만인의 활동을 ‘臺灣浪人’, 반일단체의 조직과 항일활동, 친일․부일협력자, 중일전쟁 시기의 항일투쟁으로 나누어 검토해보고 아울러 그 삶의 모습을 엿보고자 하였다. 일제시기 중국에 진출한 대만인이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만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언어소통에 큰 문제가 없는 화남지역 특히 복건에 가장 많이 거주하였고, 만주국 수립 이후와 중일전쟁 기간 대륙으로 건너간 사람이 그 이전보다 많았으며, 상공업에 종사한 사람이 가장 많았고 의사․교사․학생 등 정상 직업을 가진 자가 다수였지만 도박․아편․매음 등을 업으로 삼은 무뢰배와 기녀들도 적지 않았다. 당초 대만에서 죄를 짓고 중국으로 밀항한 자가 주축이었던 대만낭인들은 이후 일본의 남진정책에 따라 강력한 범죄 집단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비호 하에 온갖 불법을 저질러 私利를 챙기고 중국의 치안을 파괴하고 중국인을 멸시하고 괴롭혔을 뿐 아니라 일본의 중국침략에 앞장섰다. 이들은 대만인 전체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고 중국인의 악감정을 불러일으켜 결국 戰後 대만인과 대륙인의 충돌을 야기하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 식민지지배를 거부하고 중국에 온 대만지식인과 청년학생들은 중국 거주 대만인을 결집, 항일활동을 전개하였고 더 나아가 중국인․조선인과 함께 각종 단체를 결성하고 잡지를 발간하여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고 대만 해방을 주장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후에는 대만의용대와 대만혁명동맹회 등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에 나섰지만 국민당정부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고 대만 접수작업에도 직접 참가하지 못했다. 일제시기 중국 진출 대만인 중 항일운동 참가자와 친일협력자 및 무뢰배들을 제외한 대다수는 안정된 생활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처한 상황에 따라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도 이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중일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서 이러한 처신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고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된다. 이에 일본군 내지 괴뢰정권에 참여하여 안전을 보장받고 일본‘신민’으로서의 ‘특권’을 누린 이들은 전후 그 ‘代價’를 지불하거나 자신의 중국 경험에 대해 침묵해야만 했다. 일본제국의 일원으로서 일본 세력의 확장에 따라 출세와 이익을 위해 스스로 중국에 진출한 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식민통치의 차별과 억압에 불만을 품고 좀 더 나은 자기 발전을 위해 중국에 건너갔거나 전쟁 중 군인이나 군속 등으로 징집된 이들에게는 억울하고도 슬픈 일이었다.
Abstract
這篇論文是試圖掌握殖民地台灣人在中國大陸的多樣經歷, 以便于理解在日治時期台灣人的祖國認識, 即他們所認同的一面所做的研究。為此先對台灣人赴大陸的動機和其類型, 以地域劃分整理之后,分別對於“台灣浪人”, 反日團體組織和抗日活動, 親日或附日的台灣人, 以及中日戰爭時期抗日鬥爭進行研究, 同時一探他們的生活面貌。雖然對于日治時期赴大陸的台灣人確切的人數無從得知, 但是在與台灣相鄰並且沒有語言溝通障礙的華南地區, 特別是在福建省居住的人數為最多。時間上在滿洲國成立后和中日戰爭期間來大陸的人數比其以前更有增加。其中工商業者最多, 還有以醫生, 教師, 學生等從事正常職業的人數爲多, 但也有為數不少的以賭博, 走私鴉片, 賣淫為生的無賴和妓女等人。當初以在台灣因犯罪偷渡到中國的人爲主的“台灣浪人”, 隨著后來日本南進政策的展開, 以强有力的犯罪集團壯大起來。他們受到日本的庇護, 從事各種不法活動,謀取私利, 破壞社會治安, 不僅為難和蔑視中國人, 而且成為日本侵華的走狗。他們抹黑了台灣的整體形象, 而且激起中國人對于台灣的厭惡感, 結果他們成為戰后挑起台灣人與大陸人之間衝突的重要原因之一。另一方面, 拒絕殖民地支配而赴中國的台灣知識分子和青年學生們, 將在中國居住的台灣人結集起來, 展開抗日活動, 更進一步地與中國, 朝鮮人共同將各種團體組織起來, 發行雜誌, 反對日本帝國主義, 要求解放台灣。中日戰爭爆發后, 他們組織了台灣義勇隊和台灣革命同盟會等團體, 投入到抗日活動中去, 但是他們從未得到國民党政府的全力支持, 國民党亦沒有讓他們直接參與戰后台灣的接收工作。日治時期赴中國的台灣人當中, 除了參加抗日運動的人士, 親日派和無賴之流之外, 多數人都是以過安定的日子爲優先, 故根據他們所處的狀況, 把自己的身份隱藏或利用而生活。但是中日戰爭爆發后, 這種辦法再也不被容納,他們被迫在中國和日本之間作出選擇。那些選擇了投入到日本軍隊或傀儡政權下, 得到安全保障, 并享受日本“臣民”的”特權”的人, 在戰后為此付出了代價或者對于他們在中國的經歷不得不缄口不言。作為日本帝國的一員, 隨著日本勢力的擴張, 為了自身的利益而赴中國的人, 即使如此, 不過對于殖民統治的差別待遇和壓抑感到不滿, 而為了自己的發展或者被應徵為軍人或軍屬的身分赴中國的人來講, 這恐怕是不公平和悲傷的事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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