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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의소묘(懿昭廟) 의례의 형성과 특징

Euisomyo Ritual Formation and Character of the Joseon Royal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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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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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조선 제 21대왕 영조의 세손이자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아들로 태어난 의소세손(懿昭世孫, 1750~1752)을 국가 의례 길례의 대상 신(神)으로 삼고 영조 대부터 고종 대까지실천된 ‘의소묘(懿昭廟) 의례’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 그 특징과 의미를 규명하는 것이다. ‘의소묘’는 의소세손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을 지칭하는 이름이며, ‘의소묘 의례’는 상장례 이후 사당인의소묘에서 행해진 정기 및 비정기 의례를 말한다. 의소세손은 영조에 의해 세손으로 책봉되어 왕위에 오를 것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3세에 훙서하였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상장례 이후 길례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유교의 죽음관에 의하면 의소세손을 제사하려면 양자를 세워서 하거나윗세대와 합사시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왕)가 제사의 주체되어 의소묘 의례를 행하는 것은주체와 대상이 적합하지 못한 음사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었다. 사당 의소묘는 특별한 논란이나 정치적인 쟁점이 되지 않고 건립되었다. 의소묘가 순조롭게 생성될 수 있었던 배경을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탕평책으로 인해 왕권 강화와 국가 의례의재정비 시기였다는 배경이다. 영조의 생모이자 후궁이었던 숙빈 최씨를 제향한 육상묘 의례가 국가의례로 등재된 것을 비롯하여 세자들의 묘소에서 행한 세자묘 의례가 마련되었다는 사실은 그 근거로 볼 수 있다. 이것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제향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두 번째 배경은 사당 의소묘 이전에 있었던 세자 사당들의 존재와 이곳에서의 의례를 국가가주관했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생성된 순회묘가 정당성을 획득하고 건립된 전례가 있었다. 그리고 국가 기관인 봉상시의 업무 내용을 정리한 태상지에서 의소 묘와 그 이전에 건립된세자 사당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 배경은 17세기 이후부터 부계 중심의 가계 의식이 이루어지면서 문중 조직과 종법 제도가 강화된 것이다. 장자는 그 아버지의 주요한 후사로서 그리고 조상 봉사의 주요한 주재자로서특권을 가진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영조는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의 사당인 조경묘를 건립하고국가 의례로까지 책정하였다. 부계 중심의 조상 의례는 왕실의 시조를 찾고 드러내는 일뿐 아니라적장자로서의 ‘세자’의 위격과 명분을 강조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의소묘 의례는 다른 왕실 조상 의례보다는 낮은 격으로 행해졌지만, 정조대에는 소사로 격상되기도 하였다. 축문 호칭은 ‘할아버지-손자’의 관계가 아닌 ‘국왕-의소세손’의 관계로 설정되었다. 이후 왕대에도 변함이 없었다. 의소묘 의례의 특징은 생전과 동일하게 ‘세손’으로서의 공적인 신분을 유지하였고 이는 고종 대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의소묘의 건립과 의례의 생성 명분 및 동기는 유교 죽음관과 제례의 원칙만으로는 설명할 수없다. 의소묘의 건립 명분이 자신의 근본에 보답하고 생명의 근원을 돌이켜 본다는 보본반시의 조상 의례의 명분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왕실 조상들과 함께 국가 의례의 길례로서 실천되었다. 따라서 의소묘 의례를 기존 왕실 조상의 범주에 편입시키기보다는 독립된 ‘세자 의례’의 영역으로 분리해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Abstract

Within this paper I shall discuss the ways in which the religious culture of the Joseon dynasty changes through ‘Euisomyo(懿昭廟) Ritual’ of Joseon Royal Family, which were performed as Joseon dynasty national rituals(國家儀 禮) by analyzing its formation and how the character. Euisoseson(懿昭世孫), the grandson of King Yongjo(英祖), who was the Crown Prince but has died early and childless, became the object of worship. Originally, a grandson like this one could not be made the object of ancestor worship for he was not a father of a king. This rituals’object of worship countered Confucianism orthodoxy. It would have to be classified as improper rituals(淫祀)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differentiation between proper rituals(正祀) and improper rituals(淫祀), but it was officially adopted as part of the national rites without any controversy. To fully understand the reason and motivation, this paper presents three elements. The first is reorganization of national rituals and sovereign strengthening in the days of King Sukjong(肅宗) and King Youngjo(英祖). The second is In the motivation of Sejamyo(順懷廟) ritual which practiced as the first same case during king Myeongjong’s(明宗) reign, the present of Sejamyo (世子墓) ritual in the national rituals(國家儀禮), the present of Tesangji(太常 志) which is the documentation of offerings and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朝鮮王朝實錄). This ritual was preserved even after the passing of the kings who had originally performed it. The third is the development of large kinship organizations and strength of Lagal-family system. This represents the importance of the firstborn son as a center of a family and its lineage. This ritual's characteristic is that it worships as the Crown Prince as he was alive. Through the formation process of Euisomyo Ritual, we can understand more widely that in Confucianism worship was not only at the center of the descent-focused patrilineage but also the various deaths from different lineages that came to be worshipped in the royal family. Also it shows us the meaning and the importance of deaths in the formation of new institutions and in the expansion of the boundaries of existing institutions and principles. Through the formation of this ritual, an lineage of the childless Crown Prince within the royal-family was for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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