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祖 經學의 淸代 學說 受用 樣相에 對한 一考察 -『弘齋全書』 『經史講義 書』와 『欽定書經傳說彙纂』의 比較를 中心으로-
Qing Chinese Impact on King Cheong Jo’s Interpretation of Confucian Classics : Focusing on Gyeongsa-gangui-seo 經史講義書 and Heumjeong-seogyeong-jeonseol-hwichan 欽定書經傳說彙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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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尙書』는 본래 상고 시대의 공문서로 정치 관련 기록이자 虞ㆍ夏ㆍ商ㆍ周의 史實이 기록된 역사서이다. 이 때문에 역대 중국 왕조에서 『상서』는 정사를 시행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典故가 되었고 국가운영 및 통치체제의 이념적 근거를 제공하는 경전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조선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淸은 世祖 順治帝가 1644년에 북경에 입성한 뒤로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그 문화적 기반을 聖祖 康熙帝, 世宗 雍正帝, 高宗 乾隆帝의 편찬사업을 통해 마련하였다. 正祖보다 대략 한 세기 정도 앞서 청에서는 강희제에 의해서 『상서』에 대해 程朱性理學的 해석을 수정ㆍ보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청대 고증학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閻若璩(1636~ 1704)의 『尙書古文疏證』이 출현했을 때에 강희제는 『欽定書經傳說彙纂』을 만들었던 것이다. 정조 역시 정주성리학을 옹호한 통치자라는 점과 당시 조선의 상서학은 명ㆍ청대 학설의 유입 및 영향으로 인하여 정주성리학적 『상서』 해석보다는 독자적 해석체계를 세우려 한 전변의 시기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정조가 『상서』 강의를 진행했을 때는 강희제의 상황과 유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강희제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정조는 『상서』 강의를 하면서 『흠정서경전설휘찬』을 참조하기도 하였는바, 현재 연세대학교 국학자료실에는 정조의 소장본으로 추정되는 『흠정서경전설휘찬』 총 14冊이 존재한다. 강희제의 『흠정서경전설휘찬』은 蔡沈의 『書集傳』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集說과 附錄을 구비하여 맹목적으로 채침의 설을 따르지 않고 『서집전』의 잘잘못을 분별하여 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는 『서집전』이 가지고 있는 취약점인 制度ㆍ名物ㆍ道里ㆍ山川 등에 대한 훈고와 고증을 보완하여 성리학적 『상서』 해석의 완벽성을 추구한 것이다. 정조 또한 채침의 『서집전』을 절대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채침이 주희의 명을 받아 지은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응당 주희의 설과 일치해야 함을 전제로 하여 채침의 해석을 주희의 설과 함께 일관된 체계상에서 파악하려고 하였다. 정조는 주석의 체계에 있어서 통일성과 일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해석상 모순점이 발견되는 『서집전』은 하나의 주석체계로서 불완전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정조의 『서집전』에 대한 비판적 접근 태도는 『서집전』을 硏鑽함으로써 완벽한 주석서로 탈바꿈시키고 정주성리학적 『상서』해석 체계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이다.
Abstract
The Book of Documents, or Shang Shu 尙書, is originally official and political records of ancient China, which shows the history of dynasties of Wu 虞ㆍXia 夏ㆍShang 商ㆍZhu 周. This old document had been regarded as a ruling precedent in Chosŏn Korea as well as Chinese successive empires. In the midst of cultural policy of mass compilation and publication conducted by the first emperors of Qing China in 17th - 18th Century, Emperor Kangxi tried to revise and substitute Cheng and Zhu‘s Neo-Confucian interpretation of Shang Shu and published Heumjeong-seogyeong-jeonseol-hwichan 欽定書經傳說彙纂, almost a century ahead of King Cheong Jo, and at the contemporary of 閻若璩(1636~1704)’s Sangseo-gomun-sojeung 尙書古文疏證, the milestone of newly fashioned bibliographical study of Qing China. King Cheong Jo, who also was an advocator of Neo-Confucianism, was facing a Chosŏn scholar’s challenge to establish new interpretation on Shang Shu against orthodox commentaries of the early Song Confucians, under the influence of new scholarly trends of Ming and Qing China, which was a similar circumstance that Kangxi himself faced a hundred years ago. In the favor of the Qing emperor, Cheong Jo consulted with the book Heumjeong- seogyeong-jeonseol-hwichan when he discussed Shang Shu with his official-scholars in the court, and his collection consists of 14 volumes of the Kangxi‘s book is existing now at Yonsei University. Heumjeong-seogyeong-jeonseol-hwichan mainly follows the explanations on Cai Shen蔡沈’s Commentaries on Shang Shu 書集傳, but with critical modification and revision under the title of 集說 and 附錄 in order to complement historical investigation, which was said to be the weakness of Cai’s commentary. Cheong Jo also didn’t followed Cai‘s interpretation recklessly. He tried to understand his commentary in accordance with Zhu’s thought because Cai wrote his commentary upon the command of his master Zhu. Coherence in understanding of the ancient book was what King Cheong Jo valued most, so he didn't allow inconsistencies found in Cai‘s interpretation. Still, even though he criticized some parts of the commentary, his intention was to improve Cai’s doctrine, and ultimately to settle Neo-Confucian interpretation on Shang S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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