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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世紀 『學校謄錄』 分析

The Historical Analysis of {Documents of the School Administration(學校謄錄)} in the 17th century of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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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學校謄錄』을 분석하여, 17세기의 교육 실태를 파악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학교등록』은 예조의 계제사가 편집한 자료로서, 『課試謄錄』, 『校生考講謄錄』, 『童蒙禮講謄錄』등과 함께 조선후기의 교육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연구자는 이를 위해 『학교등록』에 수록된 1,100건의 문건을 일시, 발송주체, 대상지역, 주요내용의 항목으로 재정리하였고, 그 결과를 발송주체, 주요내용 그리고 시기별로 분석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발송주체별 분석결과에 의하면 『학교등록』의 상당수 자료는 각 도의 관찰사를 거쳐 예조에 보고된 사안으로서, 주 내용은 해당 지역 향교와 관련된 사항이다. 이 경우에 해당되는 비율은 전체의 73.9%를 차지한다. 이에 비하여 중앙의 館學의 경우에는 성균관이 보낸 문건이 3.5%, 사학이 보낸 문건이 1.4%로 총 4.9%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학교등록』이 기본적으로 각 도의 향교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한 문건이 중심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주요내용별 분석결과에 의하면 17세기 교육행정의 주요 관심은 향축이나 문묘제도 등과 관련된 文廟行政이 59.8%를 차지하고, 각 도의 허가요청 처리(19.4%)와 사건사고 처리(15.3%)가 뒤를 잇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하여 학교교육진흥과 관련된 교육지원이나 교육실태보고는 각각 3.6%, 2.1%로 미미한 수준에 머무른다. 이것은 당시 예조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문묘제도 및 학교의례의 확립, 각 도의 민원사항 처리(향교이건, 면강첩), 그리고 사건사고에 대한 규제 및 처벌이었다고 할 수 있고, 학교의 재정확대나 교육실태 파악을 통한 교육정책 수립 등은 주 관심사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셋째 시기별 분석결과에 의하면 17세기의 교육상황은 전쟁 이후 건물과 제도를 복구하는 仁宗代를 거치면서, 孝宗代에는 점차로 교육정상화 조치가 추진되었고, 顯宗과 肅宗代 이후로는 교육의 의례화 경향이 강화되었으며, 景宗代에 이르러 상대적인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전의 규정이 정비되고, 조선 후기의 새로운 규정들이 마련되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香祝下送의 규정은 이전부터 시행되었던 것이지만, 文廟制度, 鄕校移建規程, 免講帖發給規程, 位版作變處理規程, 校籍者科擧應試規程, 校(院)生考講規程, 敎育財政支援方案 등은 세태변화에 따라 새롭게 정비된 것들이다. 『학교등록』의 분석을 통해 파악된 이러한 결과들은 조선후기 교육을 일방적으로 평가절하하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전란 이후 새롭게 재정비되어 가는 교육의 양상을 재조명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때 연구자들은 당시의 종교와 의례에 대한 관념 이해, 각 지방 수령의 교육활동에 대한 연구, 유교식 학교제도의 운영방식에 대한 재인식, 그리고 교육인구학적 관점의 도입과 같은 다양한 시도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

Abstract

This study aims at understanding the reality of the educational adminstration in the 17th century of the Jo-Seon dynasty. To achieve this aim, it focuses 『the Documents of the School Administration(學校謄錄)』and analyses it by the agents, the contents and the regimes.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the agents of the documents are provincial governors(監司, 73.9%), Jo-Seon national university and its attached schools(館學, 4.9%), the ceremonies board(禮曹, 10.4%), Jo-Seon national command authority(備邊司, 2.3%) and the others(8.6%). The results means that the interest of the educational adminstration in the 17th century is the provincial education. Second, the contents of the documents are the adminstration of the confucian shrine(文廟, 59.8%), permission(19.4%), dealing with accidents(15.3%), educational support(3.6%) and educational report(2.1%) The results means that the interest of the educational administration is supporting and controling the confucian shrine. So the educational administration in the modern sense is not found in the documents. If we intends to get such informations, we should take another data. We can find them in the meterials of the provincial governors. Third, the educational characteristics of the regimes are typical. The regime of the In-Jo(仁祖, 1623-1649)) shows that the educational focus was the recovery of the school and the educational regulations. The son of In-Jo, eg. Hyo-Jong(孝宗, 1649-1659) put emphasis on the vitalization of school education. But Hyeon-Jong(顯宗, 1659-1674) and Suk-Jong(肅宗, 1674-1720) lay stress on the school rituals. Especially, Suk-Jong forced the ritualization of schools. Finally in the regime of Gyeon-Jong(景宗, 1720-1724) the educational adminstration entered the state of stabilization. This study gives some hints about the research of the educational history in the latter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First of all, the researchers should throw away the negative standpoint and approach the reality of the time on objective point of view and through more various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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