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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관학(館學) 기재생(寄齋生) 제도 연구

A Study on the Gijaesaeng System of Gwanhag(館學)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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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춘관통고(春官通考)』「길례(吉禮)」 중 《성균관(成均館)》 <기재생액수(寄齋生額數)>에 수록된 기사들과 이와 관련된 법규정들과 사료들을 분석하여, 이 문서의 편찬 목적과 조선후기 관학(館學)의 기재생(寄齋生) 제도의 성격과 특징을 살펴 본 것이다. 연구의 결과, 『춘관통고』 <기재생액수>의 편찬 목적은 『대전통편(大全通編)』에 수록된 관학(館學) 기재생 관련 세부 규정들의 연원과 도입 과정을 보여주는 데에 있었으며,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사들만을 취사선택하여 <기재생액수>가 편집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확인한 조선후기 관학(館學) 기재생 제도의 성격과 운영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기재생 제도는 장학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던 일종의 공사제도(貢士制度)와 관련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15세기 중종대 기재생 천거제도(薦擧制度)와 17세기 이경여(李敬輿)의 건의로 시행된 공거제도(貢擧制度)는 물론이고, 18세기에는 치경유생(治經儒生)의 수가 많아져 시강(試講)과 통독(通讀)을 선발의 기본 절차로 삼았지만, 각 도에 1인씩 기재생 승보 인원을 추천하여 올리게 하거나,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열악한 관서와 관북, 제주의 유생들을 배려하는 보완규정을 둔 것은 기재생 제도가 지닌 공사제도로서의 성격이 조선후기에도 여전히 유지되었고, 서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교육여건과 기회가 부족한 지방 유학(幼學)들을 배려하려는 정책적 기조도 지속되었음을 말해 준다. 둘째, 관학(館學)의 기재생을 치경유생(治經儒生)으로 충원하여 전강(殿講)이나 식년시(式年試)를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시켰다는 사실은 이 제도가 조선후기 경학(經學) 장려정책 중 하나라는 관점에서 파악해 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셋째, 조선 전기에는 정원이 정해져 있지 않고 성균관 생진 정원에 빈자리가 생기면 우수한 인재를 천거로 하재에 승보시키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는데 비해, 17세기 양난 이후 관학을 정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기재생은 성균관 하재생 20명과 사부학당 거재 유생 20명(각 학당 5명), 전체 40명의 정원이 정해졌고, 이후 조선후기 기재생의 액수는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이렇게 기재생 정원이 정착되었다는 것은 정원만큼의 재정적 지원과 안정적 운영이 보장되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조선 전기의 기재생은 성균관 하재생을 의미했는 데에 비해, 조선후기는 사부학당 유생들의 인적구성과 학사관리방식의 변화로 인해 사부학당 거재(居齋) 유학(幼學)도 성균관 하재생과 함께 관학(館學) 기재생 범주 안으로 통합되어 관리되었다. 이것도 조선후기 관학 기재생 제도 운영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article analyzes <Gijaesaengaecksoo(寄齋生額數)> in Chungwantonggo(春官通考) with historical records and legal regulations and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Gijaesaeng(寄齋生) system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purpose of the compilation of <Gijaesaengaeksu(寄齋生額數)> was to show the origin and the process of establishment of laws and regulations related to Gwanhag(館學) Gijaesaeng(寄齋生) system of Daejeontongpyeon(大全通編), and the compilation was edited based on the selected documents. The characteristics of Gijaesaeng(寄齋生) system in the late Joseon Dynasty identified through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Gijaesaeng(寄齋生) system should be understood in relation to the kind of Gongsajedo(貢士制度) implemented as part of the scholarship policy, and it had a policy stance that cared for local students. Second, the fact that Gijaesaeng(寄齋生) of Gwanhag(館學) were recruited from Chigyeongyusaeng(治經儒生) to prepare for Signyeonsi(式年試) suggests that this system should be understood from the perspective of an important policy to encourage studying Confucian scriptur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ird, after the 17th century wars, the number of Gijaesaeng(寄齋生) was set in a total of 40, including 20 Hajaesaeng(下齋生) in Sungkyungwan(成均館) and 20 Yuhag(幼學) in Sahag(四學) (5 in each Hakdang(學堂)), and the fixed number of Gijaesaeng in Gwanhag(館學) in the late Joseon Dynasty remained constant. This means that financial support and management was fully secured as much as the number of students were guaranteed. Finall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Gijaesaeng meant Hajaesaeng(下齋生) of Sungkyungwan(成均館), whereas in the late Joseon Dynasty, Yuhag(幼學) who lived and studied in Sahag(四學) were also integrated in Gijaesaeng(寄齋生) category of Gwanhag(관학) due to changes in the student composition and academic management system of Sahag(四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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