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중종(1455-1544) 연간 유생전강(儒生殿講)의 시행 및 과시화(課試化) 과정 연구
A study on the conduct and Gwasihwa(課試化) of Yusaengjeongang(儒生殿講) from King Sejo to King Jungjong’s reign(1455-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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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세조-중종(1455-1544) 연간 유생전강의 시행 과정 및 과시화(課試化) 과정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세조대는 이전 대의 전시(殿試) 단계에서의 친강(親講)을 지양하고, 매달 1일, 15일에 정기적인 전강을 시행하면서 유생들의 경학 공부를 장려했다. 세조는 해당 전강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면서 유생들의 공부를 장려했고 전강의 성적을 누적하여 기록하고 식년시 문과 초시 초장에 반영하도록 했다. 예종 또한 전강을 시행하여 유생들을 독려하였다. 조하일 외에 5/11/21/25일의 조참일에도 전강을 시행하였는데, 다만 친강하지 않고 대신들로 하여금 전강을 주관하게 하였다. 예종대도 전강 성적의 치부는 계속되었으며, 예종1년(1469)의 예조의 절목을 보면 누적 성적이 뛰어난 경우는 식년 문과 회시에 직부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성종대도 1일, 15일의 국왕에 의한 전강이 유지되기는 하나 성종7년(1476)-성종16년(1485) 동안은 전강 기록이 없다. 해당 기간에는 전강보다는 과거에 관심이 높았던 시기로, 경학 실력만으로 식년시 급제가 가능한 명경과(明經科)과 설치되어 항식(恒式)이 되었다. 성종16년 이후 성종은 전강을 시행하면서, 성종24년(1493)에 이전대와 같이 그 점수를 치부하고 우수자를 문과 복시에 직부하는 절목도 마련하였다. 중종대의 유생전강은 세조대 이래의 정기전강 외에 불시전강도 시행되었다. 중종대 전강에 의한 과거 혜택은 중종9년(1514) 이래 이전의 점수 누적에 의한 치부가 아니라, 단시(單試) 성적의 결과로 내려졌다. 중종 대부터 한 회의 전강 성적에 따라 직부회시 및 급분 등의 은사가 내려지는 과시화(課試化)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경향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상의 세조-중종대 유생전강의 시행 과정은 전강 점수의 치부에서 단시(單試)로 과거 혜택의 시험 횟수가 바뀐 것으로 볼 때, 일견으로는 점차 과거와의 연계가 강화된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지속적인 전강의 시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강을 통한 유생들의 경학 공부 장려 방책으로 점차 그 혜택이 강화되었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focuses on grasping the conduct and Gwasihwa(課試化) of Yusaengjeongang(儒生殿講) from King Sejo to King Jungjong’s reign(1455-1544) Druing King Sejo's reign(1455-1468), Jeongang began conducting for the first time and regularly instead of Chingang(親講) which was the oral test in by the King the final stage of the civil service examinaton(Gwageo(科擧)). King Sejo made the high scores of Jeongang of the candidates, Yusaeng(儒生) of Seonggyungwan(성균관) and Sabuhakdang(四部學堂), recorded and then it would be reflected in the first stage of Gwageo. King Yejong(the period of reign 1468-1469) was relatively young related to hosting Jeongang so made the senior statesmen do it for him. The recording of the scores and its reflection were continued in this period. During King Seongjong’s period(1469-1494), Seongjoing’s interest was Gwageo rather Jeonjang. He created the Gwageo’s step conducted by only oral tests about Confucian Classics. During King Jungjong's reign(1506-1544), the benefits of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began to be awarded through only once Jeongang. This meant the connection of Jeongang and Gwageo was forced as the result began conducting by Gwasi(課試). The action started in Jungjoing’s 9th year(1514) and this Gwasihwa(課試化) lasted to the later periods. Gwasihwa of Jeongang, as mentioned earlier, on the one hand meant reinforcement of the connection between the two. On the other hand it reflected that the conduct of the consistent Jeonjang and summing the records were very diffic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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