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명종대 문과정시 시행 연구
A Study on the Conduct of Munkwa(文科) Jeongsi(庭試)during King Jungjong's and Myeongjong's Reig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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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중종(1506-1544)・명종대(1544-1567)에 문과정시가 시행되는 과정을 고찰하였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정시는 중종대에 비정기적인 제술 과시를 가리키는 용어로 주로 사용되었다. 중종은 관・학의 진흥을 위하여 관・학 유생에 대한 과시인 정시를 시행하고 직부전시 이하의 은사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관・학 유생에 대한 정시를 과거인 ‘별시’로 이름하고 급제를 내리기도 했다. 소수의 관・학 유생만을 대상으로 과거를 시행하는 것에 대하여, 대신들은 지속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대신들의 반대는 중종29년(1534) 「권학절목」을 반포한 이후부터는, 과거를 유생들의 거관 및 청강을 장려하는 것으로 여기면서 긍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중종37년(1542)과 명종14년(1559) 문과정시 응시자는 모두 관・학 유생들이었다. 이전까지 관・학 유생에 대한 과시의 의미만 있던 정시는, 두 과거를 통해서 문과로서의 의미도 추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시는 여전히 과시로서의 의미가 강했다. 명종14년(1559) 문과정시는 이전에 관・학 유생에 대한 과시에서 은사를 받은 이들에 대한 과거로, 12명에게 급제를 내렸다. 이 과거의 급제자 수가 소수의 응시자 수에 비해 많았음에도 당시에 별다른 논란이 없었다. 이것은 관・학 유생의 과거가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고 교육을 진흥시키는 주요한 방편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Abstract
This study investigates the process of the conduct of Munkwa(文科) Jeongsi(庭試) during King Jungjong's(1506-1544) and Myeonjong's(1544-1567) reigns. Jeongsi refered to the irregular written test of Guasi(課試) during King Jungjong's reign. King Jungjong attempted to promote Gwan・Hak(館・學) by implementing Jeongsi. Furthermore, he implemented Byeolsi(別試) as a civil service examination exclusively for Gwan・Hak's candidates. Initially the courtiers opposed the policy because it was for the minority. They changed their attitude after King Jungjong's 29th year(1534) as they decided to agree that it was good for the promotion of Gwan・Hak. Munkwa Jeongsi in King Jungjong's 37th year(1542) and King Myeongjong's 14th year(1559) was conducted exclusively for Gwan・Hak's candidates. With the addition to these two irregular civil service examinations, Jeongsi had gained another meaning of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in addition to the Guasi as an encouragement test. Though 12 successful candidates in Munkwa Jeongsi in 1559 were much more than the number in 1542, there was not any argument. This was because Munkwa Jeongsi for Gwan・Hak's candidates was accepted as an effective way to promote Gwan・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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