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의 독도 불법 영토편입의 과정 및 ‘시마네현 고시 제40호’ ‘고시’의 유무
Incorporation of Japan’s Dokdo into Illegal Territory and ‘Shimane Prefecture Notification No.40’
0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나카이 요자부로는 독도의 위치와 명칭에 대해서 『일본수로지』에 기초해서 기록하였다. 이것은 나카이가 해군성의 『일본수로지』까지 제공받아, 정부와 개인이 합작하여 독도를 인식하고 소유하려는 사실을 알려준다. 더구나 나카이가 1904년 독도에서 망루 건설을 함께 작업한 인물은 바로 일본 육군이었다. 나카이는 영토를 확장하려는 제국주의와 자신의 애국심을 동일하게 연결시켰는데, 일본의 독도 영토편입을 촉구하면서 독도의 어업 독점해 달라는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나카이는 기본적으로 독도를 ‘무인도’라고 설정하고 독도 편입에 대한 절차적인 문제까지 파악하였다. 나카이는 독도의 불법 영토편입과정을 다음과 같았다. 일본의 시마네현과 오키도의 관리는 독도의 불법 영토편입과정에서 세부적인 협의를 위해서 문서를 주고 받았다. 특히 오키도사 히가시 분스케는 독도의 새로운 명칭 ‘죽도’까지 작명할 정도로 깊숙이 개입하였다. ‘죽도’ 명칭 사용은 바로 나카이의 편입 요청에 따른 히가시의 결정이었다. 나카이는 독도 불법 편입 과정에서 정부 관료와 적극적으로 협의하였다. 첫째 농상무성 수산국장 마키 나오마사[牧朴眞]는 반드시 ‘죽도’가 한국령에 속하지 않는다는 주의를 주었다. 둘째 해군성 수로부장 기모쓰키는 나카이에게 단정을 제공하여, ‘죽도’가 완전히 무소속인 것을 확인시켰다. 셋째 일본외무성 정무국장 야마자 엔지로는 러일전쟁의 상황에서 시급히 독도를 영토로 편입할 필요가 있으며, 독도에 망루(望場)를 세우고 무선 또는 해저 전선을 설치하여 러시아함대를 감시하고, 나카이의 청원서를 외무성(外務省)에 회부해야 한다고 제기하였다. 무엇보다도 일본 내무성 당국자는 러일전쟁 이후 “한국령의 의심이 있는 암초”, “일본의 한국 병탄(倂呑) 야심이 있다는 의혹” 등을 제기하였는데, 이것은 일본 스스로 독도 불법 편입이 일본의 한국 강점의 신호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이자 한국의 영토, 독도에 대한 통감부와의 협의 등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나카이가 울릉도의 부속섬인 독도라는 지리적 개념, 한국의 영토라는 영역적 개념 등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현재까지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기준으로 일본의 독도 편입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시마네현청에 따르면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는 1945년 8월 시마네현 청사가 전소될 때 함께 원본도 소실되었다.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는 1905년 당시 필기체로 작성되었다고 한다. 현재 시마네현청의 고시 40호는 인쇄체 형태이다. 이것은 원본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사본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는 원본 문서가 없다면 그 문서에 기반을 둔 일본의 증거력도 국제법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Abstract
In 1904, Nakai Yozaburo worked with the Japanese army to build a watchtower on Dokdo. Nakai linked his patriotism with the imperialistic ambition for territorial expansion, expressing his desire to monopolize the Dokdo fisheries, while urging Japan to incorporate Dokdo. Basically, Nakai defined Dokdo as “uninhabited” and was aware of the procedural problems of the Dokdo incorporation. In this context, such a chaotic circumstance was fundamentally caused by the scheme of the Shimane Prefecture Office which attempted to incorporate two Korean islands in the East Sea, Dokdo and Ulleungdo, into Japanese territory under the jurisdiction of this prefecture. However, when it was confirmed as a historical fact that Ulleungdo has been part of Korean territory; the Shimane Prefecture Office tried to have Dokdo under its jurisdiction. In order to achieve this goal, the prefecture office intentionally created the confusion surrounding the names of Dokdo and Ulleungdo around 1905. In conclusion, Japanese occupation of Dokdo was closely related to the Russo-Japanese War, which broke out in February 1904. The Japanese government illegally incorporated Dokdo into its territory in February 1905, before the end of the Russo-Japanese War. The last naval sea fight, the Battle of Tsushima, broke out in the sea near Dokdo. The Japanese Navy completed the watchtower construction in Dokdo in August 1905. On top of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provided Nakai with a special treatment of granting him the watchtower. To date, Japan has been advocating for Japan’s incorporation of Dokdo on the basis of “Shimane Prefecture Notification No. 40.” According to the Shimane Prefecture Office, “Shimane Prefecture Notification No. 40” was lost in August 1945 when the white hall was burned down. “Shimane Prefecture Notification No. 40” was hand-written in 1905 when it was first created. However, the currently available “Shimane Prefecture Notification No. 40” is in a printed form. This raises the possibility that not only did the original document disappear, but also its copy has been manipulated. In addition, “Shimane Prefecture Notification No. 40” should be examined internationally based on the document, unless its original copy is available.
참고문헌 (41)
- 국회도서관, "일본 자료로 보는 독도, 서울", 국회도서관, ~ (2013)
- 堀和生, "一九O五年日本の竹島領土編入", 朝鮮史硏究會論文集, 24 (1985)
- 김수희, "나카이요 사부로(中井養三郞)와 독도어업", 인문연구, (58), pp.127~156 (2010), 인문과학연구소
- 김수희, "나카이 요자부로(中井養三郞)와 독도 강점", 독도연구, (17), pp.67~108 (2014), 독도연구소
- 김영, "해군성 수로부장 기모쓰키 가네유키(肝付兼行)에 관한 고찰", 한일군사문화연구, 23, pp.181~198 (2017), 한일군사문화학회
- 김화경, "동해 해전과 독도의 전략적 가치 -러일전쟁과 일본의 독도 강탈을 중심으로 한 고찰-", 대구사학, 103, pp.149~176 (2011), 대구사학회
- 다케우치 다케시(竹內猛), "‘고유영토론’의 역사적 검토" (2013), 선인
- 박현진, "17세기 말 울릉도쟁계 관련 한·일 ‘교환공문’의 증명력: 거리관습에 따른 조약상 울릉·독도 권원 확립·해상국경 묵시 합의", 국제법학회논총, 58(3), pp.131~168 (2013), 대한국제법학회
- 외무부 정무국, "독도문제개론", 외교문제총서 11호, ~ (1955)
- 유미림, "우리 사료 속의 독도와 울릉도" (2013), 지식산업사
- 최장근, "「竹島経営者中井養三郎氏立志傳」의 해석오류에 대한 고찰 -죽도문제연구회의 『최종보고서』비판-", 일어일문학, (40), pp.275~294 (2008), 대한일어일문학회[DOI]
- 최철영,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허상" (2018), 동북아역사재단
- 쿠보이 노리오, "독도의 진실" (2017), 부산민족학교
- 한철호, "일본 해군 수로부의 오키 측량과 독도 인식", 한국근현대사연구, (65), pp.7~39 (2013), 한국근현대사학회
- 허영란, "19세기 말-20세기 초 일본인의 울릉도 도항과 독도 영유권 문제", 동북아역사논총, 13 (2006)
- 竹島問題に関する調査研究報告書, "Web竹島問題研究会", ~ (2008)
- "公文類聚"[URL]
- アジア局2課, "(秘) 竹島漁業の變遷 中井養一 口述書", 昭和28年度 涉外關係綴(竹島關係綴), 44~ (1953)
- "加藤重造-島根縣知事 松永武吉, 明治38年(1905)4月13日, 「竹島貸與請願」", 『竹島貸下·海驢漁業書類(明治 38-41年)』(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05)
- "島根縣 內務部長 書記官 堀信次→隱岐島司 東文輔, 明治37年(1904)11月15日, 「庶1073號」", 『(秘)竹島』(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04)
- "島根縣 內務部長 書記官 堀信次→隱岐島司 東文輔, 明治38年(1905)4月11日, 「農487號」", 『(秘)竹島』(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05)
- "島根縣 第3部長 堀信次→隱岐島司 東文輔, 明治38年(1905)5月10日, 「農685號」", 『(秘)竹島』(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05)
- "島根縣 總務部長→隱岐島 廳長, 昭和26年(1951)9月5日,「總第號外記」", 『昭和26年度 涉外關係綴』(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51)
- 島根縣隱岐島廳, "明治36年 調査 營業人 中井養三郞", 竹島貸下·海驢漁業書類(明治 38-41年)(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 島根縣隱岐島廳, "明治37年 調査 營業人 中井養三郞", 竹島貸下·海驢漁業書類(明治 38-41年)(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 島根縣隱岐島廳, "調査書 加藤重造", 竹島貸下·海驢漁業書類(明治 38-41年)(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 島根縣隱岐島廳, "事業經營槪要", 行政諸官廳往復雜書類(島根縣總務科所藏), ~
- "島根縣知事 松永武吉, 明治38年(1905)6月5日, 「島根縣農1926號」", 竹島貸下·海驢漁業書類(明治 38-41年)(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05)
- "島根縣知事 松永武吉→隱岐島廳, 明治38年(1905)5月3日, 「島根縣地90號」", 『(秘)竹島』(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 "島根縣知事 恒松安夫→地方自治廳 次長·外務省 情報文化局 特別資料課, 昭和27年(1952)5月12日, 「總694號 別添 竹島(舊松島)をめぐる諸問題」", 『昭和26年度 涉外關係綴』(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52)
- "隱岐島 廳長→島根縣 總務部長, 昭和26年(1951)9月10日, 「總第號外號 別添 總厚1478號」", 『昭和26年度 涉外關係綴』(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51)
- "隱岐島司 東文輔→島根縣 內務部長 書記官 堀信次, 明治37年(1904)11月30日, 「乙庶152號」", 『(秘)竹島』(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04)
- "隱岐島司 東文輔→島根縣 第3部長 堀信次, 明治38年(1905)5月22日, 「乙農805號」", 『(秘)竹島』(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05)
- "隱岐島司 東文輔→島根縣知事 松永武吉, 明治38年(1905)3月7日, 「甲庶16號」", 『(秘)竹島』(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05)
- "隱岐島司 東文輔→島根縣知事 松永武吉, 明治38年(1905)5月17日, 「甲土4號」", 『(秘)竹島』(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05)
- "隱岐島司 東文輔→第3部長 堀信次, 明治38年(1905)5月6日, 「乙農92號」", 『(秘)竹島』(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05)
- 日本外務省, "(極秘) 日本海の竹島について", 『昭和26年度 涉外關係綴』(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52)
- 竹島漁獵合資會社 代表社員 中井養三郞, "會社營業報告 別紙 明治38年(1905)度業務執行顚末", 『(秘)竹島』(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07)
- 中井養三郞, "庶1073號 別紙 リヤンコ島領土編入幷ニ貸下願", 『(秘)竹島』(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04)
- "中井養三郞·井口龍太·橋岡友次郞·加藤重造→島根縣知事 松永武吉, 明治38年(1905)5月20日, 「乙農805號 別紙 海驢漁業許可願」", 『(秘)竹島』(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05)
- "中井養三郞→隱岐島司 東文輔, 明治38年(1905)7月25日, 「乙衛26號 別紙 御受書」", 『(秘)竹島』(島根縣總務部總務課所藏), ~ (1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