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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巖 金志洙의 思想과 自決殉國

The thought and sacrifice for the country of Simam Kim, Ji 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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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자결순국은 가장 적극적이고 극단적인 항일투쟁이었다. 유학자들은 일제의 침략에 맞서 자결로써 항거했다. 김지수는 일제의 은사금을 거부하고 자결한 순국지사이다. 김지수는 충남 연산출신으로 사계김장생의 11대손이었다. 김장생은 조선 예학의 종장으로 당대 최고의山林으로 존숭받았으며, 그의 사상은 김집, 송시열, 한원진으로 계승되었다. 따라서 김지수는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김장생, 김집으로 이어지는 예학의 종장을 배출한 가문 출신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학문은 家學인 禮學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김지수는 族親 金永膺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와의 관계로 杞菊亭 講會와 亦樂齋契에 참여하면서 宋近洙․ 宋秉璿․ 宋秉珣 등과 교류하게 되었고 송시열의 사상을 습득했다. 그는 지역 유학자들과 교유하기 시작하면서 연산지역에서 학계를 조직해 유림들을 결속하고 가문의 위상을 정립하는 활동을 벌여나갔다. 이러한 활동을기반으로 관계에 진출했으나 곧바로 사임하고 은둔자정의 길을 선택했다. 김지수는 1911년 일제가 소위 은사금을 보내오자 절명시를 남기고자결했다. 일제에게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정도를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김장생의 예학을 계승했고 유학의 효용성과 절대적 진리를신봉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의리와 대의명분을 지키는 것이 바로 ‘禮’ 였다. 그는 자결순국으로 자신의 학문인 예학의 義理를 실천한 것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문인들도 같았다. 송병선․송병순․이학순은일제의 침략에 맞서 자결순국한 대표적 유학자이다. 송병선은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했고 이학순과 송병순은 은사금을 거부하고 자결했다. 이들은 ‘金長生-金集-宋時烈-權尙夏-韓元震-宋能相-宋煥箕-宋穉 圭’로 이어지는 기호학통을 계승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결순국을 통해 학문적 전통과 신념, 문인에 대한 의리, 유학적 가치와 질서를 지키기 위해 자결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Abstract

Kim Ji Su sacrificed his life for the country and rejected to receive the Japanese Empire’s royal bounty. He was born at Yeonsan, Chungnam Province, and a great grandson of Kim, Jang Sang. Kim, Jang Sang was a master of 예학 in Chosun and respected as a San-lim of the day. His thought was succeeded to Kim, Jip, Song, si Yeol and Han, Won Jin. Thus, Kim, Ji Su had much pride in his family and his studies was based on the Yehak Kim, Ji Su was influenced by one of his relatives, Kim, Young Woon, and interchanged experience and learned the thought of Song, Si Yeol at the Kigookjeong and Yeoklackjaekae. Interchanging experience with Confucian scholars at Yeonsan area, he was very active at organizing Confucian scholars and set up his family’s status. Through these activities, he became a government official, but resigned immediately and lived in seclusion. In 1911, when the Japanese Empire gave a royal bounty, he committed suicide leaving a poet. He succeeded Kim, Jang Sang’s Yehak, and believed in the usefulness of the Confucianism and absolute truth. For him, Ye was the fidelity, and just and great cause. He put his thought and theory into practice by committing suicide. With him, Song, Byong Sun, Song, Byong Soon, and Lee Hank Soon who succeeded Kiho School, also committed suicide against Japanese invasion. Song, Byong Sun committed suicide against the Protectorate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concluded in 1905. Song, Byong Soon and Lee Hank Soon committed suicide rejecting the Japanese Empire’s royal bounty. They chose to commit suicide for their academic tradition and beliefs, fidelity to scholars, the Confucian values and order

참고문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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