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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部體制의 특징 - 사탁부의 위상과 諸部의 내부구성을 중심으로 -

The Characteristics of Bu System in Shilla - With a focus on the status of Satakbu and the internal organization of Jeb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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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중성리비>․<냉수리비>․<봉평리비>에 보이는 탁부․사탁부 중심의 정치운영 양상에 대해, 종래에는 5세기경 탁부 왕실이 집권력을 강화하여 사탁부를 통합한 때문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매금왕․갈문왕 병존과 탁부․사탁부 중심 정치운영은 신라 부체제의 특징이며, 두 部의 통합은 6세기 초반 사탁부 至都盧 葛文王의 비상적인 집권과 즉위 이후 부체제 해체 또는 사탁부 중심의 부체제 재편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냉수리비>와 <봉평리비> 건립기 사이에 부체제 변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한편 <중성리비>에서는 王이 등장하지 않고 탁부 阿干支와 사탁부 아간지가 함께 下敎한 특징이 있는데, 본고에서는 두 아간지를 탁부와 사탁부의 相적 존재로 이해했다. 신라 부체제에서는 모든 부에 1인의 部長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복수의 干支가 공존하는 경우도 있었다. 매금왕의 諸部 지배방식도 부장을 통한 수직적 납공관계였던 것이 아니라 諸干支들이 매금왕과 개별적 납공 관계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사탁부는 갈문왕이 독자적으로 지배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읍락지배방식은, 국왕은 道使 등의 대리인을 파견하여 직할지를 ‘직접지배’하고, 간지들은 예하 관료를 거느리고 別主하면서 생산물의 일부를 국왕에게 납공하는 형식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지방통치방식은 비교적 늦은 시기까지 금동관 賜與와 납공을 통한 공납제적 지배가 일부 유지된 것이 확인된다.

Abstract

The old explanations interpreted the patterns of political operation in “Jungseongribi,” “Naengsuribi,” and “Bongpyeongribi” with a focus on Takbu and Satakbu as the results of the royal family of Takbu reinforcing its strength to seize power and integrating Satakbu in the 5th century. The coexistence of King Maegeum and King Galmun and the Takbu and Satakbu-centric political operation were characteristics of Bu system in Shilla. The integration of the two Bus happened in the abnormal process of King Jidoro Galmun of Satakbu seizing power in the early 6th century and in the breakup process of Bu system or Satakbu-centric reorganization process of Bu system after he came to throne. That is, there were changes to the Bu system between the establishment of “Naengsuribi” and “Bongpyeongribi.” In “Jungseongribi,” both the Aganji of Takbu and that of Satakbu made an order together with no appearance of king. The present study understood the two Aganjis as Guksang of Takbu and Satakbu. In the Bu system of Shilla, not all Bus had a single head. There were cases in which there were multiple Ganjis. The Jebu ruling method of King Maegeum was not a vertical tributary relation through heads of Bus but an individual tributary relation between the king and individual Jeganjis. Satakbu is estimated to have been under the sole ruling of King Galmun. As for the ruling method of towns and villages, kings “directly ruled” the local districts by dispatching their agents such as Dosas, whereas Ganjis played the roles of masters with officials working for them and paid tributes of some products to the kings. As for the method of local governance, “indirect ruling” through gilded copper crowns as imperial gifts or tributes was maintained in some areas until relatively later peri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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