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년 당군과 신라군의 연합 작전에서의 몇 가지 문제
Some problems in the allied operation of the Tang army and the Silla army in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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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660년 백제 공격에 나선 당군과 신라군의 연합 작전이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떻게 전개된 것인지를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이미 당과 신라 연합군의 기본 전략에 대해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들이 누적되어 있어 큰 줄기는 밝혀져 있지만 세부적인 면에서 언급되지 않거나 보강이 필요한 부분들을 메워 양국의 연합 작전을 구체적으로 복원해 보고자 하였다. 우선 백제 공격을 결정한 당이 신라에게 덕물도에서 회합하자고 한 이유는 당군이 서해 중부 횡단항로를 이용하여 덕물도에 도착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항로에 대한 정보는 신라에서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 당은 신라에 구체적인 작전 계획은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라군은 경기도 일대에서 당군과 합군하거나 양국 군대가 따로 진격하는 경우를 모두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래서 신라군은 남천정까지 북상하였던 것이다. 비록 신라군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와 같은 신라군의 북상은 백제의 방어 전략 수립을 혼란스럽게 만든 효과를 낳았다. 덕물도 회합에서 소정방이 제시한 전략은 수륙 양공 작전과 사비성 남쪽에서의 합군이었다. 수륙 양공 작전은 백제의 방어선을 분산시켜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고 빠른 시일 내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속전속결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해로를 이용하는 당군에 비해 육로로 백제 국경을 돌파해야 하는 신라군에게 불리한 전략이었다. 양군이 사비성 남쪽에서 합군하기로 한 것은 백제 방어선이 비교적 약한 곳으로 진격하고자 한 것이었지만, 유사시 의자왕이 남쪽의 전라도 방면으로 피신하여 전쟁이 길어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의도였다. 한편 이 당시 당군이 신라군에게 보급 부대의 역할을 맡긴 것으로 보는 견해가 널리 확산되고 있는데, 군사 전략 상의 문제점과 실제 신라군의 수송 능력 등을 고려하면 당시 신라군만이 전적으로 보급 부대의 역할을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당군이 유인궤로 하여금 별도의 보급 부대를 담당하도록 했던 자료에 근거하면 신라군에게 보급을 전담시킨 것이 아니라 별도의 보급 부대를 운용했음을 알 수 있다.
Abstract
This paper is to find out what intention brought about the allied military operation of Tang Dynasty and Silla to attack Baekjae in 660 and how it was carried out. The existing research results are accumulated and the outline of the basic strategy of the Tang and Silla allied forces is revealed. However, I tried to restructure the united operations of the two countries in detail by filling in areas that are not mentioned or need reinforcement.. First, the Tang who decided to attack Baekje decided to meet Silla in Deokmul Island because the Tang army arrived at Deokmul Island using the middle crossing route of the West Sea. Information on this route seems to have been provided by Silla. At that time, the Tang had not given a specific plan to Silla, so Silla army had to keep in mind that either the army with the Tang army in Gyeonggi-do, or the army of the two countries went apart. So the Silla army was up north to Namchenjeong. Although this was not the intention of the Silla army, the Silla army's advance to the north led to the confusion of Baekje's defense strategy. The strategy that Su Dingfang proposed during the talk at the Deokmul Island was simultaneous execution of both army and naval attack and to join the forces in the south of Sabi-castle. The intention of the strategy to use both army and naval troops was to distribute defense of Baekjae forces to minimize loss of soldiers and to end the battle soon. However, it was disadvantageous for Silla, which had to break through the Baekje border on land, compared to Tang which was to go from the sea. The reason that the two armies decided to join in the south of Sabi Fortress was to advance to the area where Baekjae’s defense was relatively weak but also, in the event of an emergency, for King Uija to escape to the south in order to prevent the war from lasting long. On the other hand, the opinion that the main role of Silla at that time was taking charge of distributing supplies for the Tang army is spreading widely. However, it is difficult to reckon that the army of Silla took the role considering its actual transportation ability and the issue of military strategy. In particular, the fact Yu Ingye of Tang was running separate ship for supply signifies that they did not made the troops of Silla to take responsibility of distributing supp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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