衛滿朝鮮의 王儉城 위치에 대한 최근 논의와 비판적 검토
A Study on the Location of Wanggeomseong-palace(王儉城), the capital of Wimanjoseon(衛滿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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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 朝鮮列傳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4세기~기원전 3세기에 燕은 眞番과 朝鮮을 공략하고 鄣塞를 쌓았다. 그리고 기원전 2세기경 燕 지역에서 나온 衛滿은 遼東故塞를 지나 浿水를 건넜다고 한다. 따라서 王儉城의 위치와 관련해 遼東故塞와 浿水의 위치 비정이 가장 중요하다. 기원전 4세기~기원전 3세기에 燕은 東胡를 물리치고 造陽(현 하북성 회래현)에서 襄平(현 요양시)에 이르는 지역에 鄣塞를 설치하고, 상곡군·어양군·우북평군·요서군·요동군을 설치하였다. 5개 郡 가운데 遼東郡은 襄平에 치소를 두고 18개 縣을 관리하였다. 이때 요동반도에 위치한 遼東郡 지역에 설치한 장새가 遼東故塞이다. 『사기』 조선열전에 기록된 위만의 남하 기록을 보면, 漢이 등장하여 古朝鮮과 경계로 설정한 浿水는 遼東故塞의 남쪽에 있었다. 漢代에 요동고새 남쪽에서 패수로 비정할 수 있는 강은 압록강과 청천강 두 강이 있었다. 그런데 『漢書』 地理志 등 문헌 기록에는 漢代 遼東 남쪽의 鴨綠江이 浿水가 아닌 鹽難水 또는 馬訾水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古朝鮮과 漢의 경계가 되었던 浿水는 압록강(염난수) 남쪽에 있는 淸川江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遼東古塞를 나와 浿水를 건넌 衛滿은 준왕을 밀어내고 王儉城에서 衛滿朝鮮을 세웠다. 이 기록대로라면 고조선 수도 王儉城은 浿水 남쪽에 있어야 한다. 漢 군대가 고조선을 공격할 때 浿水를 건넌 뒤 洌水 입구에 위치한 王儉城을 포위하였다고 하므로, 洌水는 패수보다 남쪽에 있는 지금의 大同江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후기 고조선의 왕성인 王儉城은 平壤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최근 고고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왕검성 요동설은 고고 자료만으로 논의를 펼친 것이다. 그러나 문헌 자료에서는 遼東 지역 이남에 王儉城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고고학자들은 이에 대한 대안이나 합리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고고학 자료에 입각한 논의를 주장하여야 한다.
Abstract
According to the records of the “Saji(史記)” Joseon dynasty, the Yan(燕) Dynasty attacked Jinbeon and Joseon kingdoms and built a fortress during the 4th century B.C. and 3rd century B.C.. Weiman(衛滿), which came from the Yan area around the 2nd century B.C., crossed the Paishu-river(浿水) by passing the Liaodong old fortress(遼東古塞), indicating that the boundary river of Han and Gojoseon was located on the southern side of the Liaodong old fortress. However, in the literature records such as “Hanshu(漢書)” geographical record, the Yalujiang-river(鴨綠江) is recorded as a Yannanshu-river(鹽難水), not a Paishu-river(浿水). Therefore, it is reasonable to regard the Paishu-river(浿水) that had been the boundary between the Han(漢) and the Gojoseon(古朝鮮) as the Cheongcheonjiang-river(淸川江), south of the Yalujiang-river. Then Wiman(衛滿), who left the Liaodong old fortress(遼東古塞) and crossed the Paishu-river, pushed back the king and built the Wimanjoseon in Wanggeomseong-palace(王儉城). According to this record, the Wanggeomseong-palace, the capital of Gojoseon, should be south of the Paishu-river. It is said that when Han’s army attacked Gojoseon, it crossed the Paishu-river and surrounded the Wanggeomseong-palace, located at the entrance to the Lieshu-river(洌水), so the Lieshu-river must be the Daedongjiang-river(大同江), which lies south of the Paishu-river. Therefore, it is clear that Wanggeomseong-palace was in Pyongyang. The theory of “the Wanggeomseong-palace is located in the Liaodong area,” which was recently suggested by the archaeological community, was discussed only with archaeological data. However, the literature records that the Wanggeomseong-palace was found in the southern region of Liaodong. Therefore, archaeologists should present alternatives or reasonable answers to this and insist on discussions based on archaeological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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