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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임나의 조’ ―신라 측에서 본 종래설 비판―

Shilla(新羅) and 'Mimana no Cho'(任那의 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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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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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한일관계사의 실체, 나아가 일본고대국가 형성과정 및 그 특징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근거의 하나가 바로 ‘임나의 조’와 ‘질’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종래의 대외관계사나 국가형성사에 관한 일본학계의 통설적 이해는 末松保和의 임나일본부론, 石母田正의 東夷의 小帝國론, 西嶋定生의 冊封體制론의 기초 위에 성립되었는데, 이들 3학설에 있어서 ‘질’은 국가 간의 충성복속의 상징, ‘임나의 조’는 조공의례의 공납물로 간주되어 각 설의 입론 전개에 중요한 근거로 자리매김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나의 조’와 ‘질’의 이해를 둘러싸고 한일양국의 이해는 긍정론과 부정론으로 크게 대립되어 이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본고는 ‘임나의 조’ 이해의 기초작업의 일환으로서 새로운 이해를 위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지금까지 통설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임나일본부를 전제로 한 말송설, 말송설에 입각한 석모전설, 그리고 양자의 이해를 기초로 한 鈴木英夫설로 대표되는 신설의 ‘임나의 조’ 이해를 재검토해 그 문제점을 분명히 했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가) 일본고대의 대외관계 및 고대국가의 특질을 규정한 石母田의 동이의 소제국론은 복속의 상징으로서의 질, 복속의례의 조공물로서의 임나의 조를 전제로 한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 나) 왜 왕권의 임나의 조 수령을 신라 백제의 임나영유에 대한 승인조치로 이해한 위에서 642년 백제의 가야지역 탈환을 계기로 왜국이 임나의 조 납입․제공 대상을 신라에서 백제로 전환시켰다는 말송설에 기초한 통설적 이해가 성립할 수 없다는 점, 무엇보다도 신설과 관련해 다) ‘임나의 조’가 신라의 대외전략에 기초한 對백제견제책으로서의 대왜정책으로 입안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최근 일반화되고 있는 신설의 이해는 ‘임나의 조’의 출현시기, 신라 측의 기본적인 자세, ‘임나의 조’가 실제 보내진 횟수, 그리고 鈴木설의 존립기반인 ‘식읍’의 존속기간과 성격 문제 등을 통해 신라 측이 제공한 ‘임나의 조’가 결코 전략물자로서의 유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따라서 금후의 임나의 조의 이해는 ‘임나의 조’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던가, 종래의 일본학계의 이해와는 전혀 다른 관점(예를 들면, 6세기 후반 이후의 왜 왕권의 극히 현실적인 대신라외교정책으로 보는 이해 등)에서의 접근이 요망되는 것이다.

Abstract

古代韓日関係の実体, ひいては日本古代國家の形成過程及びその特徴を理解するにおいて, 重要な一つの手がかりが「任那の調」と「質」の問題といえる. なぜならば, 従来の対外関係史や國家形成史に関する日本学界の通説的理解は, 末松保和の任那日本府論, 石母田正の東夷の小中華·小帝國論, 西嶋定生の冊封体制論の基礎の上に成立されているが, これらの学説において「質」は國家間の忠誠·服属の象徴, 「任那の調」は朝貢儀礼に伴う貢納物と看做され, 各説の立論·展開に際し, 重要な根拠の一つとして位置づけられているからである. よって, 「任那の調」と「質」の理解をめぐって, 韓日両國の理解は肯定論と否定論とに大きく分かれ, 見解の相違を見せているのである. 本稿は, 「任那の調」理解の基礎作業の一つとして, また, 新しい理解のための手がかりをえるために, 今まで通説的地位を維持してきた, 任那日本府を前提とする末松説, 末松説に基づいた石母田説, そして両説の理解を受け容れた鈴木英夫説に代表される新説における「任那の調」の理解を再検討し, その問題点を明らかにしたものである. その検討結果は次のようになる. まず, ア) 日本古代の対外関係及び古代國家の特質を規定した石母田正の東夷の小帝國論は, 末松氏の任那日本府論をそのまま受け容れたのみならず, 服属の象徴としての「質」, 服属儀礼における朝貢物としての「任那の調」の存在を前提としており, 甚だ危険と言わざるを得ないという点, イ) 倭王権の「任那の調」受領を新羅·百済の任那領有に対する承認措置と看做した上で, 642年における百済の加羅地域奪回という出来事を契機として, 倭國が「任那の調」納入·提供の対象を新羅から百済へ転換させたという末松説に基づいた通説的理解が成り立たないこと, 何よりも, 従来の通説の問題点を克服すべく出された新説と関連し, ウ) 「任那の調」が決して新羅側の対外戦略に基づいた対百済牽制策としての, 対倭政策として立案されたものでないことを確認した. 特に, 最近, 広く受け容れられている新説の理解については, 「任那の調」の出現時期, 新羅側の姿勢, 「任那の調」が送られた回数, そして鈴木説の存立根拠である「食邑」の存続期間とその性格問題などを通じて, 新羅提供の「任那の調」が決して戦略物資としての有効性が認められないということを明らかにした. したがって, 今後における「任那の調」の理解は, 「任那の調」の存在そのものを全く否定するか, 従来の日本学界の理解とは全く異なる視点·観点(たとえば, 六世紀後半以降の倭王権の極めて現実的な対新羅外交政策と看做すなど)からの検討が望まれる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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