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日本書紀』에 보이는 百濟의 ‘君’號에 대한 考察

The Title “Lord of Baekje" in Nihon shoki

0

조회

0

다운로드

8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日本書紀』에 보이는 百濟의 ‘君’號는 키시(キシ)와 키미(キミ) 2가지의 훈독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훈독의 차이는 백제의 ‘君’號가 가지고 있는 성격과도 연관이 있다. 키시(キシ)로 훈독되는 ‘君’號는 일정한 세력을 형성하였던 인물들에게 주어진 칭호였다. 초기에는 왕이나 왕족의 인물들에게서만 ‘君’號가 보였으나 점차 귀족이나 가야, 왜의 인물에게서도 백제의 ‘君’號가 사용되었다. 무령왕대에 이르러서는 백제 ‘君’號가 분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무령왕은 키시(キシ)로 훈독되는 ‘君’號의 범위를 骨族으로 한정시키며 骨族이 아닌 인물의 ‘君’號를 키미(キミ)라는 다른 훈독으로 구분지은 것이다. 더욱이 키미(キミ)로 훈독되는 ‘君’號 소지자의 역할이 국가의 외교적인 부분을 담당한 점은 백제의 국가체제하에서 ‘君’號가 관료로 전환되는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백제의 ‘君’號는 倭에서 활동하였던 ‘君’號 소지자의 세력 및 후손들을 통해 倭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Abstract

In Nihon shoki the title “Lord of Baekje,” or Baekje-gun, has two readings, Kisi (キシ) and Kimi (キミ). The differences in the reading of gun (君) are related to the nature of the title “Gun” in Baekje. “Gun” was a title granted to those who composed a certain power. It was only used for kings and members of the royal family in the early period and gradually spread to noblemen and people of Gaya and Japan. Its usage began to be differentiated during the reign of King Muryeong (501-523), who limited the scope of “gun” read as Kisi to the Goljok and granted “gun” read as Kimi to those who were not Goljok. In addition, those who held the title of “gun” read as Kimi were responsible for the country’s diplomatic relations, which indicates that the title “Gun” transferred to officials serving in the Baekje government. It is likely that the “gun” title of Baekje had direct and indirect influences on Japan through the power and the descendants of the holders of the “gun” title who were active in Japan.

참고문헌 (27)

  1. 김숙자, "일본어의 호칭접미사 Kun(君)의 의미용법", 상명대학교인문과학연구, 15 (2004), 상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 金英心, "百濟의 ‘君’號에 대한 試論的考察", 百濟硏究, 48 (2008), 忠南大學校 百濟硏究所
  3. 김은숙, "일본 율령국가의 백제왕씨, In 百濟遺民들의 活動" (2007), 충청남역사문화연구원
  4. 김은숙, "百濟史資料譯註集-日本篇-" (2008),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5. 金鉉球, "任那日本府硏究" (1993), 一潮閣
  6. 김현구, "일본서기 한국관계기사 연구 Ⅰ" (2002), 일지사
  7. 김현구, "일본서기 한국관계기사 연구 Ⅱ" (2003), 일지사
  8. 노중국, "백제의 骨族 의식과 골족 範圍", 한국고대사연구, 50(50), pp.193~232 (2008), 한국고대사학회
  9. 류민화, "日本書紀 朝鮮固有名表記字의 연구" (2000), 혜안
  10. 박재용, "『일본서기』의 편찬과 백제 관련 문헌 연구", 박사, 역사교육, pp.2009
  11. 梁起錫, "五世紀百濟의 「王」・「侯」・「太守」制에 對하여", 史學硏究, 38 (1984), 한국사학회
  12. 연민수, "고대한일관계사" (1998), 도서출판 혜안
  13. 李根雨, "日本書紀 에 인용된 百濟三書에 관한 연구", 박사, pp.1994
  14. 李基東, "百濟史硏究" (1996), 一潮閣
  15. 李鎔賢, "加耶諸國の權力構造-‘任那’復興會義を中心に-", 國史學, 164 (1998)
  16. 정재윤, "웅진시대 백제 정치사의 전개와 그 특성", 박사, 한국사, pp.2000
  17. 정효운, "백제의 문물교류" (2007),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18. 三品彰英, "日本書紀朝鮮關係記事考證 上卷" (1962), 吉川弘文館
  19. 三品彰英, "日本書紀朝鮮關係記事考證 下卷" (2002), 天山舎
  20. 坂元義種, "五世紀の百濟大王とその王・侯", 朝鮮史硏究會論文集, 4 (1968), 朝鮮史硏究會
  21. 坂本太郞, "日本書紀 上" (1967), 岩波書店
  22. 坂本太郞, "日本書紀 下" (1965), 岩波書店
  23. 志田諄一, "古代氏族の性格と伝承" (1971), 雄山閣
  24. 山尾幸久, "古代の日朝關係" (1989), 槁書房
  25. 笠井倭人, "朝鮮語より見た秦・漢兩氏の始祖名, In 古代日朝關係と日本書 紀" (2000), 吉川弘文館
  26. 鬼頭淸明, "日本古代國家の形成と東アジア" (1977), 校倉書房
  27. 平野邦雄, "大化前代社会組織の研究" (1969), 吉川弘文館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6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