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시대 대장식구의 전개와 특질
The Development and Features of Belt Ornaments in the Tumulus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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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에서는 중국대륙 및 한반도와 관련있는 일본열도의 대장식구를 분석하고 그 전개와 특질에 대해 살펴보았다. 고훈시대에 출토된 대장식구는 여러 양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다양한 양식에 비하여 각각의 개체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한반도 대장식구의 연구 성과를 참고로 하면 고훈시대의 대장식구는 크게 倭Ⅰ~Ⅴ段階로 구분할 수 있다. 倭Ⅰ段階는 고훈시대 전기에 해당하며 중국에서 제작된 중원식대장식구가 일본열도로 이입된다. 중원식대장식구가 출토된 무덤에서는 재지계 유물과 함께 금관가야와 왜의 교류를 시사하는 외래계 물품이 부장되는 경향이 강하므로 대장식구에 과도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倭Ⅱ~Ⅲ段階는 고훈시대 중기 전반에 해당하며 일본열도 내에서 본격적으로 대장식구 문화가 전개되는 시기이다. 이 단계에 등장하는 용문투조대장식구, 초엽문대장식구는 삼연이나 한반도에서 제작되어 이입되었으며 그 입수 주체와 부장 배경에는 왜왕권이 깊게 관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단계의 대장식구는 갑주, 찰갑과 같은 무구에 부착되거나 관 밖에서 출토되는 사례가 많아 당시 일본열도의 위세품이었던 갑주에 비하여 객체적 존재였으며 재질은 대부분 금동제여서 피장자 신분에 따른 재질 차이도 확인할 수 없다. 倭Ⅳ~Ⅴ段階는 고훈시대 중기 후반에 해당하며 용문투조대장식구, 초엽문투조대장식구가 자취를 감추는 대신 용문반육조대장식구가 대거 등장한다. 조금기술, 교구 형태, 수하식의 방울로 보아 용문반육조대장식구는 일본열도 내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기술은 도래계 공인에 의해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용문반육조대장식구가 등장하는 배경에는 雄略의 치세라는 일본 국내적 상황 외에도 한성백제의 멸망, 5세기 후엽 대가야의 발전 등과 같은 한반도의 정세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후 고훈시대 후기가 되면 대장식구가 자취를 감추는 대신 大帶가 일시적으로 유행한다. 이와 함께 왜의 독자적인 가치가 반영된 장식대도, 이식, 식리가 국산화되는 것으로 보아 大帶는 이 과정에 발맞추어 왜왕권에서 독자적으로 생산, 분배한 물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Abstract
This article analyzed belt ornaments of the Japanese Islands related to the Chinese continent and the Korean Peninsula and examined their development and features. Belt ornaments of the Tumulus period are largely classified into Japanese stages I to V. Stage I is the time when Chinese belt ornaments were transferred to the Japanese Islands. Stages II to III are the period when belt ornament culture was developed in the Japanese Islands. Belt ornaments of Stages II to III are related to royal authority. Stages IV to V feature new styles of belt ornaments. The new belt ornaments are thought to have been propagated by Korean craftsman. In the latter part of the Tumulus period, large belts were temporarily in fashion instead of belt ornaments, which disappeared. The large belts can be evaluated as the articles which were independently produced and distributed by Japanese royal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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