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아시아 국제 질서의 변동과 왜구-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초를 중심으로-
東アジア国際秩序の変動と倭寇-14世紀後半から15世紀初を中心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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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동 아시아의 국제관계를 진동시킨 <일본 침공>과 <왜구>는, 서로 약 1세기의 시간적 간격 속에서도 상호 밀접한 인과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즉 <팍스 몽골리카>의 성립, 동요, 붕괴와 <왜구의 공백기> <경인년 이후의 왜구> <왜구의 발호>는 각각 상호 대응하는 것임이 확인되었다. 이처럼 왜구의 여러 획기(劃期)가 중국 대륙 정세와 연동되어 나타나는 현상은, 왜구의 근거지와 발생지가 일본의 국경지역인 규슈 지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대륙 정세에 관한 정보가 당시 중일간을 빈번하게 왕래하던 해상(海商)과 선승(禪僧)들에 의해 일본으로 전해졌고 그러한 정보 유입이 일본사회의, 대외적 요인에 기인한 사회적 긴장을 해체시켜갔다. 이러한 긴장완화는 사회 내부의 모순을 일거에 표출시켰으며 그것은 남북조 동란의 발발로 이어졌다. 그리고 왜구는 이러한 일본 사회의 내부 모순이 국경을 넘어 전개된 것이었다. 왜구의 발호(跋扈) 현상도, 원의 쇠락과 명의 등장으로 인해 차츰 변화되어간다. ‘왜구 금압’을 내세운 명의 고려와 일본에 대한 외교적 압력은 한편으로는 고려-일본 양국의 외교적 결속을 촉진시켰다. 최영의 요동정벌도, 박위의 대마도 원정도 이러한 양국 간의 신뢰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 료슌의 대 고려 외교는 고려 - 조선 왕조의 교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 할 수 있다. 고려는 명의 금왜 압력을 역으로 활용해 명으로부터 화약과 화포 지원을 이끌어 냈으며 또한 왜구의 근거지 대마도에 대한 군사공격으로 방향을 잡아갔다. 한편 명의 대일(対日) 압력은 막부의 정서부 소탕 - 요시노 조정(남조)의 항복(남북조의 합일)을 거쳐 쇼군의 일본 국왕화(책봉체제 편입)로 전개되어 갔다. 이처럼 명의 등장은 고려 - 일본 관계의 개선을 촉진시켰으며 이를 위해 일본의 막부에게는 필수 선결과제인 ‘왜구 금압’이 강하게 요구되었다. 또한 명 - 고려 관계 역시 왜구 금압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고려로서는 명이 왜구 금압을 명분으로 내세워 침공해올지 모른다는 강한 위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것이 대마도 정벌로 구현된 것이다. 명 - 일본 관계에 있어서도 왜구 금압은 부언(附言)할 필요도 없이 최대의 외교적 과제였다. 막부의 입장에서 보면 명이 왜구 금압을 명분으로 내세워 일본을 침공할 것은 물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서부의 가네요시 왕자가 협조할 가능성에 대해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이처럼 명의 외교적 압력은 왜구(규슈 지역의 난신과 완고한 백성)에 대한 전방위적(全方位的)인 포위와 압력이 되어갔다. 그 결과 규슈 남조 세력(난신)은 소멸되어갔고 왜구도 진정되어 갔던 것이다. 이처럼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초로 이어지는 동 아시아 국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는 <팍스 몽골리카>의 동요 및 붕괴가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 한인군웅의 난(중국), 반원자주 개혁(고려), 남북조 내란과 왜구의 발호(일본)가 역사현상으로 표출되었고 그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 새로운 중원의 지배자 ‘명의 등장(중국)’, ‘왕조교체(고려-조선)’, 그리고 ‘왜구의 금압과 내란의 합일(일본)’이었다.
Abstract
前近代の東アジアにおける国際関係を大きく揺るがせた<元寇>と<倭寇>は約1世紀という時間差があるにもかかわらず, 互いに密接な因果関係を持っていた. すなわち<Pax Mongollica>の成立, 動揺, 崩壊と<倭寇の空白期>, <庚寅年以降の倭寇>, <倭寇の跋扈>はそれぞれ対応することが確認された. このように倭寇の諸劃期が中国大陸情勢と連動しているのは, 倭寇の根拠地と発生地が日本の国境地帯の九州であり, 大陸情勢に関する情報が当時中日の間を頻繁に往来していた海商や禪僧達によって日本へ伝えられたためである. 特に14世紀中葉の元の動揺に関する情報は元寇によってもたされた社会的緊張を緩ませていった. かかる緊張緩和は社会内部の様々な矛盾を一挙に表面化させ日本社会を南北朝の動乱の勃発へと導いた. 倭寇はかかる日本社会の矛盾が国境を越えて展開されたものである. 倭寇の跋扈現象も元の衰退と明の建国によって変わっていく. ‘倭寇禁圧’を掲げた明による高麗や日本に対する外交圧力は, 一方では高麗-日本両国の結束を促した. 崔瑩の遼東征伐(1388年)も, 高麗末の対馬遠征(1389年)もかかる両国間の信頼関係があってはじめて推進出来たのである. 高麗は明の禁倭圧力を逆手にとって明から火藥や火砲の支援を引き出し, 倭寇の根拠地の対馬に対する軍事攻撃も行った. 一方, 明の対日圧力によって室町幕府は征西府掃討 - 吉野朝廷の降伏(南北朝の合一)を経て将軍の日本國王化(冊封体制への編入)も実現させた. このように明の登場は高麗 - 日本の関係改善を促すと共に, 幕府には必須先決課題である‘倭寇の禁圧’を強く要求されることとなった. そうしたなかで明 - 高麗関係にもまた倭寇問題が大きく影響を及ぼしていた. 高麗は, 明が倭寇禁圧を盾にして侵攻して来る, という恐れを拭えず, それが対馬島征伐を行うこととなった. 明 - 日本関係においても倭寇問題は最大の外交的課題であった. 幕府は, 明が倭寇禁圧の為に侵攻するだけでなく, その時には征西府の懷良親王が明を導き入れることを非常に怖れていた. 明の圧力は倭寇(九州の乱臣と頑民)に対する全方位的な包囲と圧力になっていった. その結果, 九州の南朝勢力(乱臣)は消滅し倭寇も鎮圧されていった. このように14世紀後半から15世紀初における東アジア国際秩序の再編過程には<Pax Mongollica>の動揺, 崩壊が原動力として作用していた. その契機になったのが漢人群雄の乱(中國)であり, 反元自主改革(高麗), 南北朝の內亂と倭寇の跋扈(日本)はその連鎖反応として位置づけられる. その結果として現れたのが新たな中原の支配者‘明の登場(中國)’, ‘王朝交替(高麗-朝鮮)’, それから‘倭寇の禁圧と内乱の合一(日本)’であった. ところが1380年代の半ばから鎮圧されつつあった倭寇は, 15世紀に入っても完全に息絶えなかった. なぜなら倭寇は九州地域の豪族勢力間の紛争や対立の産物であったからである. 南北朝の内乱は終わったが, 九州地域の対立は形を変えながら続いた. 従って倭寇の様相も変化していった. 今後は東アジア国際関係が比較的安定したなかで倭寇はどう変わっていったのか, に関して考察し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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