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고려・조선의 對일본 외교와 왜구–13~15세기 금구(禁寇) 외교와 그 성과를 중심으로

The Diplomacy of Koryeo and Choseon for Japan and Wakou(倭寇)-focused on diplomacy to prohibit wakou and it’s product in 13~15th Century

0

조회

0

다운로드

1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1221년 가마쿠라 시대의 정치와 사회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뜨리는 조큐(承久)의 난이 발발하였다. 이후 일본해적은 고려를 대상으로 약탈하는 왜구로 전환하였다. 고려는 가마쿠라 막부에 왜구금지 사신을 파견하였고, 다자이후로부터 매우 우호적인 첩장을 받아냈다. 결과적으로 고려의 왜구금지 외교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고, 이어 발발한 간노죠란(觀應擾亂)의 영향으로 고려에 왜구가 더욱 자주 출몰하였다. 고려는 막부와 대마도에 사신을 파견하여 왜구금지 외교를 전개하였다. 막부와 대마도는 고려의 왜구금지 사신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따라서 막부와 대마도의 고려에 대한 우호적 태도는 ‘무로마치기 왜구’가 바다 건너 고려에 출몰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이다. 조선 개국 직후 ‘무로마치기 왜구’의 출몰은 대일본 외교의 최대 현안이었다. 조선은 무로마치 막부, 다자이후, 대마도, 슈고(守護)세력 등과 수시로 사신을 주고받으며 다원적인 왜구금지 외교를 시도하였다. 또 조선은 삼포(三浦)를 열고 조선에 투화한 왜인에게 생활 안정을 제공해 주는 유화정책을 실시하였다. 이 같은 조선의 대왜인 정책은 조선에게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의 국내안정에 필요한 평화유지비용이었으며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고 일본에 대한 영향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범국가적 외교행위였다.

Abstract

The revolt of Joukyu broken out in the Kamakura period, and the politics and the society of Japan was plunged in confusion. The Japanese pirate was Wakou that looted Koryeo. Koryeo sent envoys to Kamakura Bakufu in order to inhabit Wakou’s plunder and received a cover letter of amity from Dazafu. In conclusion, the diplomacy of Koryeo to the prohibition against Wakou’s plunder had produced some successful results. After Kamakura Bakufu collapsed, Wakou kept appearing and disappearing around the coast of Koryeo through Kanno’s disturbance. Koryeo sent envoys to Bakufu and Tsusima and developed the diplomatic policy to the prohibition against Wakou’s plunder. Bakufu and Tsusima were in favor of Koryeo envoys to the prohibition against Wakou’s plunder. Therefore, a friendly attitude of Bakufu and Tsusima was the conclusive evidence to prove that Wakou kept appearing and disappearing around the coast of Koryeo in the Muromatsi period. The appearance of Wakou in the Muromatsi period was a top of the agenda since Joseon kingdom was founded. Joseon exchanged envoys with Muromachi Bakufu, Dazafu and Tsusima and attempted the multifactorial diplomatic policy to the prohibition against Wakou’s plunder. Also, Joseon adopted the appeasement policy that opened the Sampo and provided Japanese who was betook to submission and was naturalized as a Joseon man and with the stabilization of livelihood. This policy increased a financial burden to Joseon kingdom. But this was a peace-keeping charge to keep the domestic stability of Joseon kingdom.

참고문헌 (36)

  1. "고려사", ~
  2. "태조실록", ~
  3. "태종실록", ~
  4. "세종실록", ~
  5. "성종실록", ~
  6. "今昔物語集", ~
  7. "中世法制史料集", ~
  8. "薩藩舊記", ~
  9. "明月記", ~
  10. "吾妻鏡", ~
  11. "百鍊抄", ~
  12. "靑方文書", ~
  13. "善隣國寶記", ~
  14. "師守記", ~
  15. "薩藩舊記", ~
  16. 칼 폰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1994), 도서출판갈무리
  17. 이영, "잊혀진 전쟁, 왜구" (2007),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부
  18. 金谷匡人, "海賊たちの中世" (1998), 吉川弘文館
  19. 신기석, "高麗末期의 對日關係-麗末倭寇에 關한 硏究", 社會科學, 1 (1957)
  20. 신석호, "여말선초의 왜구와 그 대책", 國史上의 諸問題, 3 (1959)
  21. 이은규, "15世紀初 韓日交涉史 硏究-對馬島征伐을 中心으로", 湖西史學, 3 (1974)
  22. 손홍렬, "高麗末期의 倭寇", 사학지, 9 (1975)
  23. 이현종, "高麗와 日本과의 關係", 동양학, 7 (1977)
  24. 한용근, "高麗 末 倭寇에 관한 小考", 慶熙史學, 6・7・8 (1980)
  25. 나종우, "高麗 末期의 麗・日 關係-倭寇를 中心으로", 전북사학, 4 (1980)
  26. 나종우, "韓國中世對日交涉史硏究" (1996), 원광대학교 출판국
  27. 나종우, "朝鮮前期 韓・日關係의 性格硏究", 동양학, 24 (1994)
  28. 이현종, "朝鮮前期의 日本關係", 동양학, 4 (1984)
  29. 한문종, "朝鮮初期의 倭寇對策과 對馬島征伐", 전북사학, 19・20 (1997)
  30. 한문종, "왜구・위사 문제와 한일 관계" (2005), 경인문화사
  31. 한문종, "조선전기 對馬 早田氏의 對朝鮮通交", 한일관계사연구, 12 (2000)
  32. 이영, "高麗末期 倭寇構成員에 관한 考察", 한일관계사연구, 5 (1996)
  33. 김보한, "一揆와 倭寇-", 일본역사연구, 10 (1999)
  34. 김보한, "少貳冬資와 倭寇의 일고찰", 일본역사연구, 13 (2001)
  35. 김보한, "東아시아 經濟 圈域에 있어서 약탈의 주역, 海賊과 倭寇 - 10~13세기 日本의 海賊과 倭寇를 중심으로 -", 중국사연구, (29), pp.145~170 (2004), 중국사학회
  36. 김보한, "해적과 약탈경제 - 중세 일본 해적을 중심으로 -", 동북아 문화연구, 1(20), pp.535~548 (2009), 동북아시아문화학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6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