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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에서의 한일회담 반대운동의 전개과정과 역사적 의의

Development process and historic significance of the campaign against the Korean-Japanese Con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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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1951년부터 시작된 한일국교정상화교섭은 수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초반까지 어떠한 합의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승만 정부는 국교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일본의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반면, 일본정부는 한일국교정상화를 양국 간의 미래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협정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1년 5월에 한국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박정희 정권이 수립되면서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이 급진전하기 시작하였으며, 그에 따른 반대운동도 일어났다. 군사쿠데타로 성립한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부심했고, 한국 국민들이 정부를 인정하게 만들기 위해 기존의 정부에서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이슈가 한일국교의 조속한 타결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한일회담 반대운동은 한국정부의 대일 저자세 바판, 평화선 사수,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한 경계, 미국의 한일회담 개입에 대한 비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한일회담 반대논리는 아시아의 전쟁을 야기하는 군사동맹 반대, 경제적인 면에서 일본의 자본진출로 인하여 일본 노동자의 생존권 위협, 한국의 통일을 방해하고 베트남전쟁을 지속시키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군사제휴 반대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한일회담 반대운동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함으로써 한일 양국의 운동세력이 연대하지 못함으로써 실패한 운동으로 규정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의 반대운동의 의의는 첫째, 자국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거국적인 운동이었다는 점, 둘째, 양국에서 한일회담반대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반미의식이 강해졌다는 점, 셋째 한국에서 ‘자주경제’라고 표현되었던 부분이 일본에서도 또한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경제개념으로 나타나고 있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한일회담 반대운동의 내재적 비판을 통해 일본인 자신이 식민지 지배민족이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함으로써 조선문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전쟁시기 가해자로서의 자기부정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자각은 이후 일본 사회운동에 영향을 미쳤으며, 식민지 문제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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