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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 연구의 회고와 전망-1990년대 이후 한국측 연구를 중심으로-

The Restrospect and Prospects of the study on 'Waegwan' in Korea(199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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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논문은 한국에서 최근 25년간(1990~2015년) 많은 성과를 낸 ‘왜관’ 연구의 특징과 향후 과제를 제시해 본 것이다. 우선, 왜관 연구의 성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첫째, 검토 시기는 임란 이전을 조선 전기 왜관, 이후를 후기 왜관(근세 왜관), 개항기 전후의 왜관이라는 3시기로 구분하여 연구가 이루어져 왔는데, 수량적으로는 17~18세기 후기 왜관에 관한 연구가 가장 많이 축적되었다. 이에 비해 19세기 전반의 왜관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관점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성과를 거둔 것은 조선후기 왜관에 대한 연구로, 왜관 제도의 변천을 비롯하여 통제 및 관리, 왜관을 둘러싼 주변 지역민들과의 접촉・갈등 및 경제・문화적인 교류 양상, 상호인식, 의사소통, 정보 등으로 까지 주제가 확장되어 왜관 운영을 둘러싼 구체적인 실태들이 많이 밝혀지게 되었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는 왜관 안에서의 일상적인 생활상(건축물・식생활・연중행사・의식)을 검토한 연구들이 나오면서 왜관에 대해 일본인이 집단 거주하는 ‘생활공간’으로서의 이미지가 부각되게 되었다. 또 왜관과 관련된 공간(開市・朝市・草梁村)을 둘러싸고 주변 지역민들과의 일상적인 접촉~교류에서 발생한 일탈 등을 ‘삶의 터전’(생활공간)이라는 생활사적인 관점에서 검토함으로써, ‘지역’(동래~부산)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연구들도 많이 나오게 되었다. 세째, 자료면에서 1990년대 이후 일본측 자료(對馬宗家文書)를 활용할 수 있는 연구 인력이 증가하면서 왜관 무역의 수량적인 추이나 밀무역 등에 관해 구체적인 내용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런데 새롭게 제기된 다양한 관점과 일본측 자료의 활용 등으로 실증・수량 중심의 연구가 증가하면서 전반적으로는 조일관계의 실태 및 현상을 설명하거나 재구성하는 형태적 연구의 비중이 커진 감이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향후 논쟁이 예상되거나 과제로 생각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먼저 조선후기 왜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지적할 수 있다. ① 전반적으로 왜관이 조선정부의 통제 대상이었다는 인식 공유를 바탕으로 통제의 정도(실태)에 대한 것들은 상당히 많이 밝혀졌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통제의 주체인 동래부(동래부사・역관)・접위관, 통제 대상(관수・통사) 등에 대해서도 직무와 권한 및 역할 등이 꾸준히 검토되고는 있다. 그러나 조선측 기록이 파편적인 것에 비해, 일본측 기록은 구체적이다 보니 양측 자료의 불균형으로 인해 동래부와 왜관 내 각 주체의 직무 범위와 권한, 왜관의 성격 등에 대해서는 오해(예외적 상황의 일반화, 과대 및 과소 평가)도 생기는 것 같다. 말하자면 통제의 성격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하겠다. ② 또 2000년대 이후 왜관을 일본인들의 생활공간이나 ‘지역의 생활사‘라는 관점에서 본 연구가 증가하면서, 왜관의 본질적인 성격(대일통교의 필요상 마련된 시설로서의 ‘객관’)이 주목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왜관과 왜관을 품고 있는 동래~부산 지역에 대해 중앙정부로서도 어쩌지 못하는 당시 조선의 대일정책 내지는 조선사회와 동떨어진 이질적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게 되었다. 요컨대 연구의 관점・분석 방법・자료 등을 종합해서 본다면, 왜관을 거점으로 하는 조일 통교의 구체적인 실태들이 많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으로는 조일관계~조일통교에서 ‘조선 정부(국가)’의 역할이나 권한을 상대화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관념상 존재하는 쓰시마번(對馬藩)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되게 되었음을 과제로 지적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개항기 왜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지적할 수 있다. 우선 1990년대 이후 근세 조일관계(선린우호)와 근대 한일관계(침략・피침탈)에 대한 인식의 단절을 규명하기 위해 개항 전후의 왜관(1872~1876) 연구에 큰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1872년 메이지(明治) 신정부가 ‘폐번치현’을 단행한 이후 쓰시마번으로부터 왜관을 접수한 조치, 즉 ‘왜관 침탈’이후 왜관의 성격 변화를 둘러싸고 각종 견해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연구자의 견해 차는 ‘왜관 침탈’에 대한 용어의 다양함으로 볼 수 있는데, 「왜관 점령」・「왜관 처분」・「왜관 접수」・「대마도인 퇴거」・「대조선외교 일원화」・「외무성 관할화」・「외교권 몰수」・「왜관 개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용어의 혼란은 이 시기 조선정부의 대일정책이나 대응에 대한 연구자들의 인식 차를 반영하는 것으로, 「왜관 점령」・「왜관 처분」・「왜관 접수」・「외무성 관할화」・「외교권 몰수」・「왜관 개혁」등의 용어는 그 주체가 일본(외무성)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일본의 대외정책사에서 본 이해를 반영한 것이다. 특히 일본측 사료를 바탕으로 메이지 신정부의 대조선외교라는 관점에서 1872년의 ‘왜관 처분’을 검토한 경우, 당시 조선정부의 대응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압축 표현하는 경향으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조선외교의 ‘무능론’에 바탕을 둔 근대외교 실패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조선의 대응에 대해서는 舊禮를 존중한다는 방침(교린정책) 외에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지는 않았다고 보거나, 대원군 외교의 ‘고립주의’, ‘무능’, ‘무지론’을 들어 조선외교의 ‘무기력함’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비해 ‘왜관 접수’를 메이지 정부의 「대조선외교 일원화」과정으로 보는 연구의 경우는, 일본 외무성의 ‘왜관 접수’를 계기로 왜관에서 쓰시마 번사들이 퇴거하게 되지만, 그 이후에도 표류민 송환과 같은 종래의 교린외교행위를 비롯하여 ‘조시(朝市)’・‘밀무역’은 지속되고 있었던 점에 주목하여 1872~1876년 까지도 조일 교린관계가 유지된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이 시기 조선의 대일정책 및 동래부나 부산첨사영의 대응에 대한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근세 왜관이 근대 일본공관으로 변질되어 가는 경위, 근대 한일관계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9세기 조선정부의 정치・정책사 안에서 대일본통교 및 대응(동래부사・동래부 역관・부산첨사)이 더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Abstract

本論文は、最近の25年間(1990~2015年)、韓国における‘倭館’硏究の特徴と課題を整理したものである。 まず、倭館硏究の特徴としては次のようなものがあげられる。 第一に、検討時期のことであるが、壬辰倭乱の以前を‘朝鮮前期倭館’、以後を‘後期倭館’(近世倭館)、19世紀後半の開港を前後した時期を‘開港期倭館’と名付け、三つの時期区分に沿って硏究が行われてきた。このなかで、数量的に多くの成果が蓄積されているのは17~18世紀の'後期倭館'硏究であり、これに比して19世紀前半の倭館硏究はほぼ空白をなしている。 第二に、硏究の観点であるが、朝鮮後期倭館に限って、多様な視覚から検討が行われ、また研究成果も圧倒的に多い。研究テーマとしては倭館制度の変遷をはじめ、朝鮮政府の倭館統制および管理、倭館と周辺の地域住民との接触・葛藤、経済・文化的な交流の様子、相互認識、意思疏通、情報、などにまで広がり、倭館運営の具体的な実態があきらかになった。 それに、2000年代以後は、倭館内の日常的な生活相(建築物をはじめ、食生活・年中行事・儀式)を探求する硏究が発表されつつあり、倭館に対して日本人が集団居住する‘生活空間’としてのイメージが作られるようになった。またその一方で、倭館運営と関わっている空間(開市・朝市・草梁村)を‘生活の場’(生活空間)として設定し、周辺地域の住民との日常的な接触~交流のなかで生じる逸脱行為を生活史的な観点から検討することによって、‘地域’(東萊~釜山)の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求めようとする硏究も増えつつある。 第三は、史料のことであるが、1990年代以後、韓国でも日本側の史料(對馬宗家文書)を活用する研究者が増えるようになり、倭館貿易の数量的な推移や密貿易などについても制度史を越えた実証的な検討が行われるようになった。 多様な観点や日本側の資料を活用して実証・数量中心の硏究が蓄積されるようになったことは、たしかに一つの成果として擧げられる。しかし、これは総体的にいうと、朝日交流の現象を説明する形態的な硏究の比重が高くなったことを意味することでもある。したがって、これからの論点、あるいは課題として思われるものを提示してみたい。 まず、朝鮮の'後期倭館'(近世倭館)についてである。 ①倭館が朝鮮政府の統制対象であるという共同認識をもとに、統制の程度(実態)については相当の部分が明らかになった。また、統制の主体(東萊府使・通事・釜山僉事・接慰官)や、対象(館守・通詞など)についても、職務や権限などが明らかになった。しかし、史料の残り方が朝鮮側は破片的である反面、日本側の記録はとても具体的である。このような資料の不均衡により、東萊府や倭館内の人々に対する職務の範囲や権限、倭館の性格などについては誤解(例外的な事例の一般化、過大および過小評価)が生じるようになり、その結果、統制の性格はかえってわかりにくくなったことが指摘できる。 ②また、2000年代以来、倭館を日本人の生活空間、あるいは‘地域の生活史‘から検討する硏究が增加することによって、むしろ倭館の本質的な性格(対日本通交の便宜をはかるためにおかれた‘客館’)は薄れつつある。そのかわり、倭館や倭館を抱えている東萊~釜山地域に対しては、たとえ中央政府にしてもどうにもならない、朝鮮の対日本政策、ないしは朝鮮社会とは掛け離れた異質的な空間としてのイメージができあがるようになったことをも指摘できる。 要するに、硏究の観点・分析方法・資料の側面からみると、倭館を拠点とする交流の実態はとても細密な部分にまで明らかになった。しかし、その結果、朝日通交関係における‘朝鮮政府'(国家)は観念のうえでしか存在しなくなった。つまり、25年間の倭館研究史は総体的に‘朝鮮政府’(国家)の役割や権限を相対化する方向へと硏究が進んできたといえよう。このことは、やはり観念のうえで存在する対馬藩の役割を相対的に大きく位置づけることになり、この不均衡さを乗り越えるのがこれからの課題であるといえる。 また、開港期の倭館については、次のようなことが指摘できる。 まず、1990年代以来、近世の朝日関係(善隣友好)と近代の韓日関係(侵略・被侵略)の間に介在する認識の断絶を乗り越えるため、開港を前後する時期の倭館(1872~1876)について関心が高まるようになった。だが、‘廃藩置県’(1872年)以後、明治政府が対馬藩から倭館を接受する際の手続き、つまり、‘倭館侵奪’以後における倭館の性格をめぐって、様々な意見が存在するということである。 研究者たちは ‘倭館侵奪’を多様な用語で表現している。「倭館占領」をはじめ、「倭館処分」・「倭館接収」・「対馬人の倭館退去」・「対朝鮮外交の一元化」・「外務省の管轄化」・「外交権の沒收」・「倭館改革」などがそれである。このような用語の混乱は、この時期における朝鮮政府の対日本政策や対応に対する研究者たちの認識の差を反映するものでもある。 たとえば、「倭館占領」・「倭館処分」・「倭館接収」・「外務省の管轄化」・「外交権の沒收」・「倭館改革」のような用語には、その主体が日本外務省であるだけに、基本的には日本の対外政策史からみた理解が反映されている。このような用語で捉えている研究では、朝鮮政府の対応をあまりにも単純化して圧縮表現する傾向があり、結果的には朝鮮外交の‘無能論’か、近代韓国外交の失敗論に繋がっている。朝鮮の対応については、旧例を守るという方針(交隣政策)以外に何の対策も求めていなかったとするか、あるいは大院君外交の‘孤立主義’、朝鮮外交の‘無気力さ’などと片付けている。 これに比して、‘倭館処分’を明治政府の「対朝鮮外交の一元化」として捉えている硏究においては、外務省の'倭館接収'を契機に倭館から対馬藩の人々は退去するが、それ以後も漂流民送還のような交隣外交行為をはじめ、‘朝市’・密貿易などは依然として続けられていたことに注目し、1872~1876年の朝日間には従来のような交隣関係が維持されていたと指摘する。それだけに、この時期における朝鮮の対日本政策、さらには東萊府や釜山僉使営の対応についても、もっと緻密な再検討が必要であると問題提起している。 要するに、近世倭館から近代の日本公館へ変質していく経緯、近代における韓日関係の性格をあきらかにするためには、なによりも19世紀における朝鮮の政治・政策史のなかで倭館研究が検討されるべきであると考え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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