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부루-주몽 계보의 역사성과 하백녀
The Historicality of Dangun(檀君)-Buru(夫婁)-Jumong(朱蒙) Genealogy and Habaek-Nyeo(河伯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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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삼국사기 고기, 단군기, 단군본기, 제왕운기, 삼국유사 등에 기록되어 있는 단군과 부루・주몽의 계보 관계를 검토하고, 하백녀를 매개로 하여 그 역사적 성격을 살펴보았다. 삼국유사는 왕력에서 주몽이 단군의 아들이라 전제하였다. 삼국사기를 인용하여 주몽이 해모수와 하백녀에 혈연관계를 언급하고, 단군기의 기록을 중시하여 단군과 서하 하백녀를 중심으로 주몽과 부루의 계보를 서술하였다. 반면에, 제왕운기에서는 주몽이 해모수와 하백녀에 혈연관계를 언급하였으나, 단군본기를 인용하여 단군과 비서갑 하백녀를 중심으로 주몽과 부루의 계보관계를 서술하였다. 이들 계보 관계에는 하백녀가 매개로 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되었으므로, 하백녀와 관련된 단군과 부루・주몽의 계보 관계의 역사적 의미를 추구하였다. 계보 기록에 매개역을 한 동부여의 존재 시기는 3세기 말엽~5세기 초엽인 점, 황해도 은율군에 비정되는 서하 하백녀와 평안북도 영변군에 비정되는 비서갑 하백녀는 출신 지역이 다른 점이었다. 원래는 하백녀와 해모수가 혼인한 것이지만, 그 후에 하백녀가 단군과도 혼인한 것으로 견강부회한 사실에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 보았다. 묘청의 평양 천도운동이 일어나면서 1131년에 평양의 지역신은 국가의 신으로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대몽항쟁의식은 단군을 국조로 재인식하게 된 상황에서 하백녀를 연결고리로 삼아 단군 중심의 계보를 구성하였다. 제왕운기에서는 고조선 부여 외에 시라・고례・남북옥저・예맥 또한 단군의 후손으로 이해하였는데, 이는 그와 같은 역사의식을 드러내는 한 편린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연구성과가 없었는데, 본고는 이를 추구해 본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analyzed the genealogy relationship among Dangun(檀君) and Buru(夫婁) and Jumong(朱蒙) recorded in the Dangungi(檀君紀), Dangunbongi(檀君本紀), Samguksagi(三國史記), Samgukyusa(三國遺事), Jewangungi(帝王韻紀), and examined the historical characteristics through the medium of Habaek-Nyeo. The Samgukyusa assumed that Jumong was the son of Dangun. After referring to the blood relationship between Haemosu(解慕漱) and Habaek-Nyeo by quoting Samguksagi, this book emphasized the records of Dangungi and described the genealogy of Jumong and Buru centered on Dangun and Habaek-Nyeo of Seoha(西河), On the other hand, Jewangungi mentioned that Jumong's parents were Haemosu and Habaek-Nyeo. But it described the genealogy between Jumong and Buru, citing the Dangunbongi that Dangun and Habaek-Nyeo of Biseogap(非西岬) had married and had a Buru. Since the two genealogical relations were noted that Habaek-Nyeo was mediated, it pursued the historical meaning of the genealogical relationship between Dangun and Buru and Jumong related to her. The fact that the existence of eastern Buyeo(夫餘) who mediated the genealogy record was from the end of the 3rd century to the early 5th century, and the difference between the Habaek-Nyeo of Seoha who were irregular in Eunryul-gun(恩律郡), Hwanghae Province(黃海道) and the Habaek-Nyeo of Biseogap who were irregular in Yongbyon-gun(寧邊郡), North Pyongan Province(平安北道) was noted. Originally, it was Haemosu who married Habaek-Nyeo, but the fact that she was married to Dangun also considered the historical situation of the time. As a movement to move the capital to Seogyeong(西京) by Myocheong(妙淸) occurred, Pyongyang(平壤)'s local god attempted to convert into the ancestor god of the country in 1131. The ritual of resistance to Mongolia re-recognized Dangun as a national god, and connected with her to form a genealogy centered on Dangun. In addition to Gojoseon(古朝鮮) and Buyeo, Jewangungi also understood Silla(尸羅), Goguryeo(高禮), North and South Okjeo(南北沃沮) and Yemak(濊貊) as descendants of Dangun, which is a one-sided expression of such historical consciousness. There was no specific research result on this problem, and this study pursued it. This study also reveals that the tradition related to this was more added after the Joseon(朝鮮)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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