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녹피 생산과 활용 연구
A Study on the Production and Use of Deerskin during the Joseon Dynasty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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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녹피(鹿皮)는 조선시대에 사용된 다양한 피물 중 하나이다. 『조선왕조실록지리지』를 통해 조선전기에는 전국에서 녹피 공납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시기 군사력을 이용해 사슴을 사냥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조선후기에는 『여지도서』와 『각사등록』을 통해서 녹피 공납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때는 전국에서 공납이 되나 중앙 정부가 녹피를 얻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녹피가 가장 많이 쓰인 곳은 의복이다. 상의는 보통 저고리의 형태로 입었으며, 갑옷에서는 녹피 자체로 피갑을 만들거나 끈으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가죽신의 재료로도 유용하게 사용하다. 또한 병장기를 장식하는데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녹피 장신구는 평민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녹피가 조선 전 시기에 보이는 만큼 조선의 대외관계에서 등장하기도 한다. 국왕의 입장 차에 따라서 명에 녹피를 주는 표현이 달라지기도 하고 여진에는 조선이 상국임을 드러내는 장치로도 이용되었다. 청에게 주는 세폐와 방물 품목에도 녹피가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과의 교류에서는 드문데 일본에서도 녹피를 생산하고 제품으로 만들 수 있으며 막부에서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거의 드러나지가 않는 것이고, 임진왜란 이후 조선통신사도 다른 피물보다 녹피를 더 적게 가져갔다. 사슴은 전국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야생동물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피물이 아니었으며 인간 생활에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 또한 사슴은 십장생 중 하나로 장수와 영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와 특징은 녹피로 각종 물품을 만드는데 적절하였고 양반층이 평소에 사용할 수 있는 일상품으로의 기능을 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Deerskin(鹿皮) is one of various hides used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is possible to understand the state of deerskin tribute over the countr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from 『Sejongsilrokjirigi』. At that time, it was the rule thar deer should be hunted by using military power, but it was not adequately observed. It is also possible to understand the state of deerskin tribute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from 『Yeojidoseo』 and 『Gaksadeungnok』. In those days, tributary payments could be made across the country, but also the central government had various ways to acquire deerskin. The deerskin was most often used for clothes. People usually wore upper clothes in the form of Jeogori (a Korean-style jacket) and the deerskin was used to make leather armors and used as strings. It was also used as a useful material for leather shoes and often used to decorate weapons, and deerskin ornaments could not be easily acquired by commoners. The deerskin used across the whole period of Joseon dynasty appeared in its foreign relations. Joseon's attitudes in transmitting deerskin to the Ming dynasty were varied, depending on the positions of kings, and it was also used as an instrument to show Jurchen tribes that the Joseon dynasty was a superior country. It should be also included in the annual tributes and fancy goods to be sent to the Qing dynasty. It was, however, rarely traded with Japan, because Japan could directly produce and process it into products and moreover, Japan's feudal government did not need it. The deerskin, therefore, rarely appeared in the relationship with Japan and Tongsinsa also brought deerskin less than other hides to it after the Imjin War. The deer was a wild animal that could be acquired across the country. Hence, it was not the hide that could be used to show one's wealth and was not useful for human life. In addition, the deer, one of ten longevity symbols, symbolized both longevity and eternal life. The deerskin was suitable for making all kinds of items, due to such characteristics, and it may seem to function as a daily item which Yangban can usually 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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