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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일본의 단군 후대 창안설과 만선사학 -시라토리 구라키치와 이마니시 류, 이나바 이와키치를 중심으로-

Modern Japan's Dangun Later Creation Theory and Manchurian Coseon History -Focusing on Shiratori and Imanishi, Ina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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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근대시기에 들어와 다수 일본인의 단군론 중에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은 시라토리 구라키치와 이마니시 류 그리고 이나바 이와키치였다. 먼저 시라토리는 만선사의 창시자로 단군신화에 대해 후세 불교도의 창작이라는 승도망탄설을 주장하며 단군신화는 본래 불교설화에 근거한 가공의 선담이라거나 고구려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가작담이라 주장했다. 단군신화에 대한 선담과 가작담 또는 장수왕 때 성립하였다는 주장은 그 역사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시라토리의 이런 주장은 이후 식민지 조선의 단군비판이나 단군부정론의 기초가 되었음이 지적된다. 이마니시는 단군신화에 대해 고려시대에 창안된 불설(佛說)로 현재의 한민족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역사적 그리고 민족적 주체로서 고양된 단군을 쫒아내려는 이마니시의 역사학은 분명히 만선사와 식민주의 역사학의 테두리 안에 있음이 지적된다. 시라토리와 이마니시가 단군신화의 성립연대를 고구려와 고려로 한정지으면서 이후 단군신화에 대한 오독을 일으킴은 물론 식민지 조선인의 유일한 단군론자인 최남선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나바 이와키치는 조선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선사의 입장에서 단군부정론을 펼치고 조선인들 사이에 단군신화가 퍼지는 것을 우려해 단군신화의 가공성을 언급하는 한편 만선사의 입장에서 만선불가분론을 주장하였다. 이나바가 주장하는 만선사의 핵심은 두 가지로 분리할 수 있다. 하나는 만주사로 중국과 맞선 위대한 역사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선사로 패배자의 역사라는 것이다. 곧 단군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고려후기 창작물로 본 것이지만 이런 견해는 만선사 곧 식민주의 역사학 입장에서 일뿐이다. 시라토리 구라키치와 이마니시 류의 단군론에 대한 최남선의 반격은 당시 식민지 조선인으로서는 유일하다는 점이 강조된다. 시라토리와 이마니시, 이나바는 단군신화에 대해 고구려와 고려시대로 각각 창안설을 주장했지만 이는 『삼국유사』 단군신화의 승도망탄설과 함께 만선사에 경도된 것으로 그 역사적 타당성은 없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만선사의 입장에서 고조선과 고구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의 시각에서 고조선과 고구려사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Abstract

Shiratori, Imanishi, and Inaba were the most discussed among the Dangun theories of many Japanese in the modern period. First, Shiratori, the founder of Manchurian Coseon history, argued that the Dangun myth was the creation of Buddhist monks in future generations. They also argued that the Dangun myth was originally a fictional tale based on Buddhist folklore, or that it was an fake story made by the people of Koguryeo. There is no historical basis for the claim that it was established during the reign of King Changsu or an fake story of Dangunmyth. In addition, it is pointed out that Shiratori's argument became the basis for the Dangun criticism and Dangun denial theory in colonial Coseon. Imanishi argued that the Dangun myth was a Buddhist myth created during the Koryeo Dynasty and had no relation to the present Korean people. However, Imanishi's historiography to drive out Dangun, who was elevated as a historical and national subject of Coseon, is clearly within the boundaries of Manchurian Coseon history and colonial history. Shiratori and Imanishi limited the founding date of the Dangun myth to Koguryeo and Koryeo. Afterwards, it not only caused misreading about the Dangun myth, but also aroused a backlash from Choi, nam-sun, the only Dangun theorist of colonial Koreans. As a way to block Coseon's independence, Inaba held the Dangun denial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history of Manchurian-Coseon. He also mentioned the fake of the Dangun myth for fear of spreading the Dangun myth among Koreans. On the other hand, from the viewpoint of the history of Manchuria Coseon, he argued for the indivisibility of Manchuria Coseon. The core of Manchurian Coseon history that Inaba claims can be divided into two parts. It is emphasized that Choi, nam-sun's counterattack against Shiratori and Imanishi's Dangun theory was unique to colonial Koreans at the time. In the end, Shiratori, Imanishi, and Inaba argued for the creation of the Dangun myth in koguryeo and koryeo, respectively. However, this is in line with Manchurian Coseon history, along with the theory of monk manipulation in the Dangun myth in 『Samguk Yusa』. Therefore, it must be said that there was no historical valid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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