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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 대마도와의 통교 공백기 (1369~1397)의 배경 및 양상 -이마가와 료슌(今川了俊)의 대마도에 대한 영향력을 중심으로-

The Backgrounds and Aspects of the Blank Period of Friendly Interactions with Tsushima in Late Koryo and Early Joseon Period (1369~1397): Focusing on Imagawa Ryoushun’s Influence on Tsu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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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1368년(공민왕17) 고려 조정과 대마도주 소 츠네시게(宗経茂)(숭종경(崇宗經)) 간에 성립한 통교 관계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단절되었다. 이듬해인 1369년(공민왕18)부터 1397년(태조6)까지 약 30년 동안 고려・조선 조정과 대마도 간에는 통교 관계가 없는 ‘통교 공백기’ 상태가 이어진다. 이 통교 공백기에 관한 연구는 예로부터 연구자들의 주된 관심 분야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이 통교 공백기는 1368년 고려-대마도 통교 관계와 그 이후 조선-대마도 간의 장기간 통교 관계를 연결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그 학문적 중요성은 크다. 본 연구에서는 통교 공백기의 배경 및 양상에 관하여 특히 규슈 단다이(九州探題) 이마가와 료슌(今川了俊)의 대마도에 대한 영향력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1370년대 일본 막부는 ‘명과의 국교 수립, 규슈 남조 토벌, 왜구 금압’이라는 3가지 과제,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과제를 성취해야 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규슈 현지에서 그 역할을 담당했던 이가 이마가와 료슌이었다. 실제로 그는 규슈 남조 토벌과 왜구 금압에 진력하였고, 일정 부분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는 그 성과를 바탕으로 일본과 고려・조선과의 외교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상황에서 이마가와 료슌이 막부의 위임을 받아 일본 여타 세력들의 고려 통교를 금지하였던 점, 그리고 그 일환으로서 대마도 역시 고려와의 직접 통교가 불가능했다는 점을 해명하였다. 즉 고려・조선과 대마도 사이에 현안이 있는 경우, 이마가와 료슌은 대마도의 고려・조선 조정과의 접촉을 금지하고 그 대신 그가 직접 일본 막부의 ‘왜구 금압’ 의지를 일관되게 전달하였다. 이마가와 료슌의 대마도에 대한 이러한 영향력은 료슌이 실각하는 1395년(태조4)까지 이어진다. 조선-대마도 간 통교 수립 과정에 관한 기존의 통설은, 조선 측의 경제적 ‘회유책’을 강조하는 경제적 측면에 강조점을 두어 왔다. 그러나 통교 수립 직전까지의 기간, 즉 ‘통교 공백기’의 발생 및 지속의 배경에는 이마가와 료슌이라는 정치적 배경이 크게 작용하였다. 따라서 그 이후 조선과 대마도의 통교 수립 및 전개 과정에서도, 기존 통설에서의 경제적인 측면 외에, 정치・사회 등 제반 측면에서의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Abstract

The friendly interaction relation (通交關係) established in 1368 between the Koryo government and Tsushima broke off in less than one year. The state of no friendly interaction between Koryo-Joseon government and Tsushima, which is defined in this study as ‘Blank Period’, continued for about 30 years from 1369 to 1397. Up to today, the topic of the Blank Period has long been out of the main area of interest of scholars. However, this Blank Period is a very important topic, as it connected the Koryo-Tsushima interactions in 1368 and the Joseon-Tsushima friendly interactions having continued for several centuries since the start of the 15th century. This study covers the backgrounds and aspects of the Blank Period mainly in the aspect of the influence of Imagawa Ryoushun (今川了俊), Kyushu Tandai (九州探題) at that time. In the decade of 1370s, the Muromachi bakufu needed to achieve the three goals, which were in effect one same goal: (i) the establishment of diplomatic relation with Ming dynasty, (ii) the conquer of the Southern court in Kyushu, and (iii) the control of Wakou (倭寇 ; the Japanese marauders). The person who took the role in Kyushu for these goals was Imagawa Ryoushun. In fact, he tried his best for the goals of (ii) and (iii) above, achieving some tangible results. Based on such achievement, he held an unrivaled position in the diplomacy between Japan and Koryo- Joseon. This study clarifies that, based on the delegated power from the Muromachi bakufu, Imagawa Ryoushun prohibited Japan’s local powers from communicating with Koryo, and that Tsushima was not able to communicate directly, nor to engage in any friendly interactions, with Koryo accordingly. In case that there occurred any issue between Koryo- Joseon and Tsushima, Imagawa Ryoushun prohibited Tsushima from contacting Koryo-Joseon directly, and instead consistently forwarded the bakufu’s strong will for the control against Wakou to the Koryo-Joseon government directly for himself. Such Ryoushun’s strong influence on Tsushima continued until 1395, in which he was removed from his post of Kyushu Tandai. Up to today, the current prevalent view on the start of friendly interactions between Joseon and Tsushima has focused an economic aspect, emphasizing the economic ‘appeasement policy’ of the Joseon government. But, with respect to the background of the start and continuance of the Blank Period, Imagawa Ryoushun’s influence on Tsuchima had a great effect. Therefore, a comprehensive approach, covering various aspects including political and social aspects, as well as economic aspect, should be required in the study on the start and development of the friendly interactions between Joseon government and Tsu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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