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모란도 성행과 조선사회의 부귀지향
The Prevalence of Peony Paintings and The Rise of Pursuing Wealth in Chosun during th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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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19세기 조선사회에서 대거 유행한 모란도 성행의 원인과 배경을 규명하는 것이다. 19세기 이전 조선회화사에서 모란도의 회화적 존재감은 미미하다. 매화, 대나무, 난 등의 유교적 덕목을 상징하는 소재의 그림이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성행했던 점과 비교해 보면, 조선시대 문인화가들이 의도적으로 모란을 그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모란은 부귀의 상징성이 매우 강한 꽃이다. 모란의 상징은 조선시대 유가적 문인들에게는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부정적 이미지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문인들이 남긴 시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에 이르면 이러한 양상은 급변한다. 모란은 19세기 대중이 애호하는 회화적 소재로 각광받았다. 허련(1808-1893)은 ‘허모란’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묵모란도 작품을 많이 그렸고 현재 60여점의 묵모란도가 남아있으며, 그의 영향을 받은 다른 작가들이 그린 동일한 화풍의 묵모란도가 다수 전하고 있다. 한편, 19세기 민간의 생활공간 장식과 의례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민화에서 모란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병풍 전체 화폭에 모란을 단독 畵材로 그린 모란병 이 많이 남아있고, 화조도 병풍에서도 모란은 필수 화재로 선호되었으며 심지어 화조도 병풍 1틀의 2-3개 화폭이 모란으로 채워지기도 하였다. 결국 우리나라 회화사에서 모란도는 19세기에 와서 그 꽃을 활짝 피우게 되었다. 그렇다면 19세기 모란도의 대중적인 성행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모란이 상징하는 ‘부귀’에 초점을 맞추어 19세기 조선사회의 사회변동적 상황에서 해답을 찾았다. 조선의 19세기는 전통적 사회체계를 흔드는 새로운 사상적 움직임과 변혁에 대한 욕구가 적극적으로 표출되었던 격변의 세기였다. 결과적으로 19세기는 강고하게 지탱되어온 신분차별의 견고한 틀이 와해되는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이한다. 19세기 조선사회의 변동구조 속에서 가장 힘을 잃어가는 것은 관념적인 유교의 도덕 가치관이었고, 가장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은 현실적인 경제 이익의 추구였다. 경제적인 부의 성취가 신분제 사회를 대신하는 새로운 권력구조의 기준으로 부각되는 사회적 변모 양상이 모란도가 대중적으로 애호받았던 배경이 되었다. 19세에 이르러 모란도가 꽃을 활짝 피운 이유는, 19세기 조선 지식인들에게 ‘부귀’가 비로소 추구해야 할 가치 덕목으로 용인되었고, 사회 전반에 걸쳐 대중적으로 부귀지향적 성향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find out reasons and background on prevalence of peony paintings in the Chosun dynasty during the 19th century. In terms of the Chosun painting history, peony paintings could not have been in the spotlight until 19th century. Comparing to popularity of the Four Gracious Plants ─ plum, orchid, chrysanthemum and bamboo symbolizing virtues of Confucianism in Chosun, it seems that literary artists in Chosun intentionally did not paint peony paintings. Peony has been strongly recognized as a symbol of wealth. Due to the symbolism, Confucian writers tried to keep peony away ─ at that time, the symbolism was not positive meaning but had strong negative images for them. The negative image of the peony can be easily found in their poems and verses. However, this trend was dramatically changed at the turns of the 19th century. In this century, the public loved peony as a painting subject. Heo Ryeon(1808-1893), also known as “Peony Heo”, drew a lot of black ink peony paintings ─ until now, 60 pieces of them have remained. Many painters greatly impressed with his work also drew black ink peony paintings in a similar style. Meanwhile, peony paintings have significant weight in folk paintings widely used in living space ornaments and rituals in the 19th century. Many folding screens themed by peony as a single subject are well preserved. Especially, in flowers and birds folding screens, peony has been loved as a essential subject and some folding screens fill their 2~3 screens with peonies. In other words, the peony paintings started to blossom in 19th century. Therefore, this study questions why peony painting were becoming popularly thriving in the 19th century. The research focuses on “wealth” peony represents and finds out the reason from an ideological shift in Chosun during the 19th century. In Chosun, 19th century had seen drastic changes with the emergence of ideology reforming a social structure and people had actively expressed desire for revolution. As a result, in the 19th century, Chosun faced historical turning point would abolish social status discrimination strongly placed before that. In this situation, tangible economic interest started taking center stage, while moral value based on ideological confucianism continued to be fading. The new power structure that wealth attainment replaces the existing status system was emerged and this social transition led to the trend peony paintings attracted the public. The reason peony paintings drew attention in the 19th century can be explained with two factors. First, intellectuals were allowed for the first time to seek wealth as a virtue, and second, throughout the society, the trend of pursuing wealth widely spreaded in th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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