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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용가 최승희의 친일 행적에 관한 역사적 성찰+

A Historical Reflection on Modern Dancer Choe Seunghui’s Collaboration with Japanese 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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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무용

초록

연구의 목적은 일제강점기 최승희(崔承喜, 1911~1969 일본명 Sai Shoki) 친일행적의진실을 규명하고 역사적 성찰을 하려는 것이다. 문헌 연구방법으로 『친일인명사전』 및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최승희 문서, 신문자료를 검토했다. 1937-1944년에 최승희의 친일 행위는 첫째 거액을 국방헌금 및 친일단체에 기부, 둘째 수많은 황군위문공연, 셋째 친일 작품 무혼 으로 국민총력문화표창 수상 등이다. 해방 직후, 최승희는 자신의 친일 행위를 부정-인정-속죄-변명하는 과정을 보였다. 최승희의 친일에 관한자신의 입장, 남한과 북한의 입장, 해금 이후 남한 무용계의 입장을 논의하며 ‘사실’과‘인정’의 간극을 확인했다. 결론적으로, 최승희의 친일 과오와 춤의 공적을 함께 ‘기억’해야 함을 강조했다. 한나 아렌트가 통찰하였듯, ‘무사유’가 엄청난 악으로 귀결되는 현상은 과거의 나치나 친일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각자가사유하는 주체로서 무용계에 존재하는 데 이 연구가 도움이 되길 소망한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and reflect on the pro-Japanese activities of Choe Seunghui, also known as Sai Shoki (1911-1969)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 reviewed literature including the Dictionary of Pro-Japanese Figures and documents from the Investigation Committee on Pro-Japanese Collaborators, as well as newspaper articles. Choe Seunghui's pro-Japanese activities from 1937 to 1944 included: first, donating large sums of money to national defense funds and pro-Japanese organizations; second, performing numerous consolation shows for the Imperial Japanese Army; and third, receiving the National Cultural Award for her pro-Japanese work Muhon. Immediately after liberation, Choe exhibited a process of denial, acknowledgment, atonement, and justification regarding her pro-Japanese actions. The study discusses her own stance on her pro-Japanese activities, the positions of South and North Korea, and the perspectives of the South Korean dance community after the lifting of restrictions on her works, highlighting the gap between 'facts' and 'acknowledgment.' In conclusion, the study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remembering both Choe Seunghui's pro-Japanese misconduct and her contributions to dance. As Hannah Arendt insightfully noted, the phenomenon of 'thoughtlessness' leading to immense evil can occur not only in past instances like Nazism or pro-Japanese collaboration but also in contemporary contexts. This study aims to assist the dance community in existing as reflective individuals, aware of these historical les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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