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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선의 항해기록과 항해술

Navigational Records and Navigational Technologies of Envoy Ship of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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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海行摠載』에 수록된 33권의 해양기록 중에서 1607년~1811년 사이에 파견된 통신사의 항해 기록 20권을 토대로 그들의 항로와 항해 기술, 항해 시의 위기 유형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조선통신사의 항해 기록은 나중에 파견되는 사신들이 사행을 준비하고, 항해 중 일어나는 갑작스런 위기에 대처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이라고 불리는 이 문서들은 비록 형식이 정해진 공식 문서는 아니었지만 일본의 국내 정세를 파악하고, 지형과 교통로 등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정보를 제공하였다. 따라서 조선통신사에 임명되면 출발하기 전부터 이전에 다녀온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였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전의 통신사 기록을 지참하고 일본으로 향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글에서 분석한 20권의 조선통신사 기록을 항해 기록 측면에서 보면 항해의 과정을 일기형태로 기록한 것, 일기와 시문 형태로 분석한 것, 일기에 견문록이 포함된 것, 시문의 형태로만 기록된 것 등으로 크게 유형화시킬 수 있었다. 어떤 형태이든 그들이 남긴 글에는 여정과 이동 거리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후에 파견되는 통신사 일행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선통신사 파견이 결정되면 조정에서는 통영(統營)에 지시를 내려 통신사선을 제작했다. 사절단의 선박은 총 6척으로 구성되었으며, 배에 화려한 장식을 하여 위엄을 보였다. 6척의 선박은 3척의 기선(騎船, Kisun)과 3척의 복선(卜船, Boksun)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선통신사 일행은 출발 전 부산의 영가대에서 해신제를 지냈으며, 해신제 후에는 부산포, 감만이포, 절영도 등으로 자리를 옮겨 대기하다가 좋은 바람을 만나면 대마도를 향해 출발하였다. 대마도에서는 조선통신사들이 안전하게 바다를 건너올 수 있도록 뱃길에 익숙한 사공과 호위선단을 부산에 파견하였다. 통신사 일행이 무사히 바다를 건너면 대마도주가 대마도에서 에도까지의 호위를 담당하였다. 조선통신사의 일본행은 海路와 육로를 4,745리나 지나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이 중 통신사선을 타고 운항한 것은 오사카까지 3,370리이며, 오사카에 도착한 후에는 일본측에서 준비한 강선을 타고 육지에 도착한 후 육로를 통해 에도에 이르렀다. 이 때 가장 험한 곳은 부산-대마도 사이의 水宗이라는 곳이었는데, 배가 수종에 이르면 파선되거나 심하게 요동하였다. 그 후 대마도에서 오사카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도 험로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안심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조선통신사 일행이 대마도에 도착한 후에는 일본 측에서 예인선을 보내 통신사들이 탄 배를 끌고 포구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밤에 이동할 때는 대포와 불화살을 통해 앞 뒤 선박과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등불을 켜고 밤에 운항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글을 통해 조선통신사의 항해방법과 부산~에도까지의 이동 방법, 그들이 중간에 봉착했던 위기의 순간, 그에 대한 대처 방식 등에 대한 의문이 약간은 해소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글은 1607년 이후에 기술된 20편의 통신사 관련 기록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므로 조선통신사의 전체적인 양상이라고는 일반화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나머지 서적들에 대한 분석과 비교 연구는 다음 기회를 기약한다.

Abstract

The sailing routes, navigational technologies and the risks during sailing were looked into in this paper based on 20 volumes of the navigational records of envoy of Joseon Dynansty for 1607-1811 recorded in 『Haehang-chongjae(海行摠載)』. The navigational records of envoy of Joseon Dynasty became important data for preparing against the travelling of envoys despatched and endangering. The royal court produced the envoy’s ship by instructing to the military administration once the dispatching of envoy was decided. The fleet of the delegation group was constituted of 6 ships, and its majesty was shown by the brilliant decoration on the ship. Out of 6 ships, 3 ships were Kisun (Cruiser) and 3 ships were Boksun (Cargo carrier) Travelling of envoys of Joseon Dynasty to Japan was a long road of 4,745 Ri(1,863㎞) along the sea route and inland route. In this route, the cruising of the envoy’s ship was 3,370 Ri(1,323㎞) to Osaka. The envoys boarded on the steel made boat provided by Japan at Osaka, and reached to Edo via inland route after landing. At that time, the most dangerous point was a spot called as Soojong in between Busan and Tsushima Island. The ships were destroyed or shaken severly when they reached at Soojong. It was too early to feel comfortable on the second part of the route from Tsushima Island to Osaka as winding routes were positioned at everywhere. Therefore, Japan launched the tugboat and guided the envoy’s ship to the seaport after the envoys arrived at Tsushima Island. The ships in line front and back communicated with the cannon and firing arrow during the navigation in night time. There were cases of sailing in the night by lighting the l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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