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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에서 공존의 시대로 -13세기 강원지역과 몽골제국의 만남을 중심으로-

From the Era of Antagonism to the Era of Coexistence - Focused on the Encounter of Gangwon Region and the Mongol Empire in the 13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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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태백산맥을 가로지르는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진 강원지역은 몽골이 공략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기에 몽골의 4차 침입까지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그러나 南宋 공략을 위한 준비 성격이 강했던 몽골의 5차 침입은 전쟁의 양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5차 침입의 결과 東州산성과 鳳儀산성 등이 함락되었고 春州道로 연결되는 高麗의 동·서 방어 전선이 무너졌다. 다만, 기마병 중심의 몽골군이 접근하기조차 불가능한 절벽에 가까운 鴒原산성과 寒溪산성 등은 몽골군의 침입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한편, 남송원정에 앞서 고려와 남송의 관계를 단절시키려 했던 뭉케는 고려왕의 ‘出陸親朝’ 요구를 1256년부터는 ‘태자 친조’로 항복의 조건을 완화했고, 1259년에 고려가 이를 수용해 태자 王倎을 친조시키면서 30여 년간 지속된 양국의 대립이 종식될 수 있었다. 강원지역은 여·원 관계를 공존으로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291년 鄕貢進士 元沖甲이 雉嶽城 전투에서 카단軍을 격퇴한 사건을 계기로 카단군을 가볍고 보는 마음이 생겼다. 이후 고려군의 맹추격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연기현 전투 패배 이후 카단군은 전력을 상실한 채 오합지졸로 흩어졌다가 카단의 자살로 반란이 종결되었다. 카단 반란이 고려의 도움으로 종결되자 쿠빌라이는 이례적으로 고려에게 진휼미를 보내고, 포로들에 대한 推刷는 물론이고 체릭 테무르가 훔쳐간 소 값까지 돌려줄 정도로 후대하였다. 나아가 충렬왕을 征東行省左丞相에 임명해 실제적 권한을 주었으며 金印과 공신 칭호도 하사했고, 이를 기반으로 충선왕은 제국 정치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었다. 이로써 고려왕은 잃어버린 왕권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중심에서 그 나름의 위상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되었다.

Abstract

It was difficult for Mongol to attack the Gangwon Region consisting of rugged mountainous topography crossing the Taebaek Mountains. Thus, the region was relatively less damaged until the 4th Mongol Invasion. However, the 5th Mongol Invasion strongly characterized by the preparation for an attack on South Song greatly changed the aspects of the war. As a result of the 5th Invasion, Dongju Mountain Fortress and Bongeui Mountain Fortress were fallen, and the East and West Defense Front Line of Goryeo connected to Chunjudo. And yet, Ryeongwon Mountain Fortress and Hangye Mountain Fortress which were like cliffs impossible for Mongol Army centered around cavalry even to approach were able to stop the invasion of the Mongol Army. In the meantime, Mungke who would severe the relationship between Goryeo and South Song before his expedition to South Song eased the condition of surrender from ‘Chulryuk Chinjo (landing and attending at the Royal Court)’ requested by the King of Goryeo to ‘Taeja Chinjo (royal prince’s attendance at the Royal Court)’ from 1256, and Goryeo accepted this in 1259 and let Royal Prince Wang Jeon attend at the Mongolian Royal Court. That could end the antagonism between the two countries, which had continued for about 30 years. The Gangwon Region played an important role in changing the relationship between Goryeo and Yuan to co-existence. Taking Hyanggongjinsa Won Chung-Gap’s repulse of Qadan’s Army at the Battle of Chiak Castle as a momentum, the Qadan’s Army came to be taken lightly. Later, the Goryeo Army led the battle to victory with fierce traces, and after defeat at the Battle of Yeongi-Hyeon, Qadan’s Army lost fighting power and scattered disorderly. The rebellion ended with Qadan’s suicide. As the Rebellion of Qadan ended with the help of Goryeo, Khubilai exceptionally sent relief rice to Goryeo and treated it hospitably to the extent that he even returned the price of the cows stolen by Cherik Temur in addition to sending the prisoners back to their home. Further, he gave practical authority to King Chungryeol by assigning him to Jeongdong Haengsang Jwaseungsang (Left Prime Minister of Cheng Tung) and gave him a gold seal and the title of a vassal of merit. Therefore, the status of the King of Goryeo was greatly improved at the Royal of the Empire, and King Chungseon was able to intervene deeply in the politics of the Empire to the extent that he contributed to Mujong Qaishian’s enthron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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