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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의 호발설 옹호와 율곡비판 - 사칠변증을 중심으로

Woodam‘s defense of Hovalsol and the critique of Yulg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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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우담 정시한은 전란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혼란과 문화적 충격, 그리고 붕당정치의 격화로 말미암은 환국정치의 첨예한 갈등이 정치적 이합집산과 학파적 분기를 가속화시켰던 격랑의 한 세기, 17세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시대의 혼란이 피아(彼我)를 구분케하고 편당(偏黨)을 요구하는 17세기 조선의 시공간이었지만, 그러나 우담은 퇴계학파의 일원임에도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자신의 태도를 고수하면서 참다움[道義]을 지키고자 했던 도학자[山林]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우담이 보여주는 치우치지 않고 시중을 지키려는 삶의 태도는 그의 율곡비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가 비록 퇴계의 학맥을 잇고 율곡의 학설을 비판하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퇴계학맥의 활재 이구나 갈암 이현일의 율곡비판과는 사뭇 차이가 드러난다. 우담은 활재의 변론리기서(24조) - 갈암의 율곡이씨논사단칠정서변(19조)으로 이어지는 퇴계학파의 율곡비판 계보를 잇고 있으면서 학리적인 차원에서 비판하고 있다. 그는 사칠변증 42조목을 통해 율곡학을 단순히 ‘이단지학’으로 폄하하기 보다는 호발설(互發說)에 대한 정치한 이론을 전개하며서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율곡의 성리설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율곡의 입론이 나정암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히면서도 율곡의 이론 속에서 퇴계와의 동이점을 추출해 내고, 이를 통해 퇴계의 호발설에 대한 논의를 상수설(相須說)과 理發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리(理) 주재(主宰)에 대한 강화의 입장으로 나타난다. 아울러 우담의 사칠변증에서 드러난 율곡비판은 단지 ‘반대을 위한 비판’의 부정적 비판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퇴계학을 합리적으로 설명해 내기 위한 ‘부정의 수용’이라는 측면 또한 발견된다. 즉 우담의 율곡학에 대한 부분적 수용의 태도는 이후에 전개되는 퇴계학파 내부에서의 율곡학의 비판적 수용을 통한 퇴계학의 심화라는 선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학술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Abstract

Woodam‘s defense of Hovalsol and the critique of Yulgok / Kim, kyunho

참고문헌 (16)

  1. 김낙진, "정시한과 이식의 이체용론 연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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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선우, "정시한의 인물성이설에 관한 연구" (1990), 강원대 교육대학원
  5. 오주학, "우담 정시한 산중일기의 연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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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유명종, "우담 정시한의 이주기보설과 인물성동이론" (1984)
  8. 유명종, "우담 정시한의 이주기보설"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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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김낙진, "우담 정시한과 외암 이식의 체용론과 인물성논의" (1994)
  12. 유명종, "우담 정시한", 3 (1996),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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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유성선, "우담 정시한의 율곡 리기 사칠론 비판과 그 지평" (2007)
  16. 윤사순, "우담선생의 인간상과 성리학사상", 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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