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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藏關系之歷史延續性和河西地區

蒙藏 관계의 역사적 연속성과 河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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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藏 관계의 연구는 흔히 몽골과 티벳(靑藏 고원)이라는 두 지역 사이에 전개된 역사상을 재구성하는 것을 주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대개 13세기 몽골 제국의 출현 이후를 중심으로 하는데, 이는 당시 본격화 되는 몽골 제국의 티벳 지배가 두 지역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사를 자국사로서 다루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元明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티벳이 중국사 구성 요소의 일부로서 자리하는 시원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元代, 즉 몽골 제국기 티벳과 몽골의 관계는 의미 깊다. 물론 민족명 또는 지역명으로서 몽골이라는 용어는 칭기스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 성립 이후 오랜 국가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등장한 것이므로, 몽골초원과 기타 지역과의 관계를 다루는 데서도 몽골 제국 성립 이후부터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겠다. 그렇다고 몽골 초원과 티벳 고원의 관계 자체를 몽골 시대 이후로 한정해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니, 匈奴, 鮮卑, 柔然 등 몽골 출현 이전 중원 북방에 펼쳐진 초원(고원) 지대와 티벳 고원 동부의 여러 선주민 집단 간 교류는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으므로 이를 논외로 한 몽장 관계 연구는 티벳사의 중국사 편입을 역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의도와 멀리 있지 않다. 따라서 필자는 몽골과 티벳 지역을 오가며 활동했던 여러 유목계 정권의 활동을 몽골 시대 이후로 한정시키지 않고 통시적으로 이해할 필요를 제기하였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두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로서 河西 지역에 관심을 모아 보았다. 전통적으로 하서 지역은 동서 교통의 간선으로 ‘하서 회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러나 그간 대외 교역의 측면에 치중하여 중앙아시아와 중원을 연결하는 비단길의 일부로서 부각되었을 뿐, 이 지역이 갖는 또 다른 측면, 즉 남북 교통로로서의 의미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인류학자 費孝通 선생이 80년대 중반 甘肅 지역에 대한 지역 조사 과정에서 제기한 ‘隴西走廊’도 실상 하서 지역을 관통하는 남북 교통로의 일부이다. 寧夏回族自治區와 甘肅省 교계 지역에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는 隴山은 중원의 농경 지역과 서북 유목 지역을 구분 짓는 자연 경계물로 인지되어 왔다. 시기에 따라 농산의 서부라는 의미의 농서(또는 隴右)는 때로 중원 정권의 통치를 받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유목 정권의 영향 아래 놓이기 일쑤였다. 이렇게 농산을 따라 형성된 남북 교통로 농서주랑은 다시 寧夏 賀蘭山을 따라 형성된 교통로 또는 內蒙古 알락샨 에치나에 위치한 黑水城으로 통하는 교통로 등을 통해 몽골로 이어졌다. 한편 농서주랑의 남쪽으로는 황하를 따라 서진하여 靑海湖 일대로 진입하거나 天水를 거쳐 사천 북서부, 청해성 중남부와 직접 연결되었다. 月支(氏)의 남하는 물론, 후에 鮮卑가 청해 지역으로 이주하여 건설한 吐谷渾 등 흉노 및 선비계의 이동이 확인되며, 이후 吐蕃의 河西 진출, 탕구트의 西夏 건설 등은 티벳 고원에서 몽골로 진출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근세에 들어 진행된 몽골의 청해 진출, 티벳 불교의 내륙아시아 전파, 청조의 티벳 진출 등 일련의 사건 또한 모두 하서를 통해 진행되었으니 하서를 통한 두 지역의 관계는 이 지역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농산 주변의 여러 갈래 길을 따라 몽골 고원과 티벳 고원의 동부에서 오랜 동안 주민과 문명의 이동을 담당해 왔던 셈이다. 중국의 고대사에서 하서는 현재 山西省의 서쪽 경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황하의 이서 지역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몽골 초원은 물론 관중평원을 거쳐 청해, 티벳 고원으로 연결된 신석기 및 초기 청동기 사회가 펼쳐져 있었다. 점차 이들 사이에 진행된 유목과 농경의 분립은 적어도 농경을 선택하지 않은 고대 西戎, 氐羌을 관중으로부터 축출하기 시작했다. 농경과 유목 경제의 분립 이래 하서는 점차 오늘날 陝西를 뒤로 하고 감숙성 蘭州 이서 지역으로 그 범위를 이동시켰다. 따라서 고대의 하서를 논할 때 우리는 이상에서 언급한 교통로는 물론 오르도스(河套)와 녕하 및 관중 지역 사이의 교통로에 대해 언급해야 할 필요도 느낀다. 결국 유목 사회가 황하 유역에서 시기에 따라 활동 영역을 달리한 결과 유목경제의 요람 몽골과 티벳 두 지역을 연결하는 남북 교통로도 서쪽으로 이동한 셈이었다. 이에 따라 몽골과 티벳을 연결하는 남북 교통로는 주로 농산과 祁連 산맥 사이에 형성된 오늘날 감숙 지역을 통과하게 되었다. 유목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몽골과 티벳 동부 고원 지대는 秦漢 제국의 성립 이래 점차 서진하여 오늘날 隴西 지역 즉, 감숙과 청해 일부로 축소된 하서 지역을 통해 주민과 문화를 이동시켰다. 그러나 때때로 그 세력을 다시금 오르도스와 관중 지역으로 확장시키고자 하였으니 북방계 유목 정권의 중원 통치는 이러한 역사 전통과 황하 유역을 공유하는 지리적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하겠다. 이후 선비, 몽골, 만주로 이어지는 초원 유목 정권의 중원 통치가 이뤄지는가 하면, 唐과 위구르, 宋과 遼金元, 明과 몽골 같은 남북 대치의 시대가 도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남북 대치의 시대에도 몽골 초원과 티벳 고원은 유목 경제를 공유하며 빈번한 교류의 장을 마련하였으니 이 또한 하서가 남북 교통로로서 역사적 역할을 수행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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