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현종~정종대 왕실의 眞影 중심 조상 숭배 의례의 확립과 그 의미
A Study on Establishment of Ancestor Worship Ritual and the Meaning Focused on the Portraits of the Royal Family from King Hyeonjong to King Jeongjong of the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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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려시대 왕실에서 진영이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현종~정종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 확립되어 나갔던 조상 숭배 의례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시조의 진영을 숭배의 대상으로 정하고 의례 절차를 만들며 의례를 정례화한다는 것은 그로부터의 계보를 정당화하고 현실의 권력관계를 내재화하고 구조화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봉은사는 광종대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봉은사는 태조 왕건의 원당으로서 진전인 효사관을 지어 그 안에 태조 왕건의 鑄像을 안치하였다. 특히 태조의 주상은 대체로 회화 형태로 제작하는 진영과 다르다는 점에서 형태적 특징을 찾을 수 있으나, 그 형상과 상징을 통해 신성왕권과 전륜성왕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봉은사는 광종대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국왕의 봉은사 행차가 광종대로부터 약 80여년이 지난 덕종대에 나타나고 있으며, 정종대에 가서야 연등회와 팔관회 때 국왕이 태조의 주상에 참배하는 의례 형식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봉은사 진전과 태조 주상이 뒤늦게 만들어진 것은 광종대 이후 제도적 완성기에 접어들었으며, 이후 거란의 침략이 수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비정상적 방법으로 즉위한 현종의 국왕 권위 회복에 대한 의지도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현종은 태조 왕건의 신성왕권을 계승하였다는 것을 태조 왕건에 대한 숭배 의례 시설을 마련하고 그에 대한 의례 절차를 마련함으로써 보여주려고 하였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현종 사후 그의 아들인 덕종과 정종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는 국왕이 의례를 통해 신성왕권을 지닌 황제로서, 그리고 다원사회의 실질적인 구심점으로서 그 역할과 위상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out the meaning of portraits in the royal family of the Goryeo Dynasty and the meaning of ancestor worship ritual that had been established during the period from Hyeonjong to Jeongjong. To designate the progenitor’s portrait as an object of worship, to make ritual procedures and to regularize rituals can be interpreted as justifying the genealogy from it, internalizing and structuring the power relation of reality. It is said that Bongeunsa Temple was founded during the reign of King Gwangjong. Hyosagwan, Jinjeon, as an original hall of King Taejo was built in Bongeunsa Temple and the statue of King Taejo was enshrined in it. In particular, its form related characteristics can be found in terms of that the statue of King Taejo is different from the portrait usually created in the form of paintings, but it contains images of the divine right of kings and Chakravartin through its shape and symbol. However, Bongeunsa Temple was not completed in the reign of King Gwangjong. This is because that there were also the kings' parades to Bongeunsa Temple in the reign of King Deokjong, which was about 80 years after King Gwangjong, and it was not until the reign of King Jeongjong that the ritual form was arranged at Yeondeunghoe and Palgwanhoe where the king paid tribute to the statue of King Taejo. The reason why Jinjeon and the statue of King Taejo were built in Bongeunsa Temple so late was that it was reached an institutional period of completion after the reign of King Gwangjong and there were several invasions by the Khitans. It is also believed that the willingness of King Hyeonjong, who was crowned in an abnormal way, for restoration of the royal authority also played a huge role. In other words, it can be considered that King Hyeonjong tried to show that he succeeded the divine right of kings of King Taejo by establishing a ritual facility for the worship of King Taejo and preparing the ritual procedure for him. However, it was completed by his sons, King Deokjong and King Jeongjong after the death of King Hyeonjong. It can be clearly said that it showed the establishment process of its role and status as the emperor of the kings with the divine right of kings through the ritual and as an actual pivot of pluralistic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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