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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 瓦의 始原 問題

On the Origin of Silla Rooft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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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글은 신라기와가 언제부터 제작되었는지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신라 初期기와가 생산되는 유적은 경주 천북면 물천리가마터와 내남면 화곡리가마터가 있다. 이 두지역의 가마터는 이단투창고배부터 인화문토기까지 거의 신라 전 기간 동안 최대의 토기생산지이다. 이외에도 이들 가마터 보다 멀리 떨어진 기와 專用의 안강읍 육통리와요지가 있으며 여기에서도 신라초기기와가 보고되었다. 여기에서는 이들 가마터에서 출토된 초기 신라기와를 소개한 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신라最古기와는 물천리와 화곡리가마터에서 출토된 이른바 백제계 신라 고식연화문수막새, 瓦桶(기와 제작틀)을 사용하지 못한 이른바 無와통제작기법의 미숙한 생산방식에 의해 제작된 평기와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 신라 最古의 수막새는 백제의 고대도시 공주 대통사지 창건와로 연구되는 연화문수막새와 비교할 때 드림부 문양은 유사하지만 각 연판의 크기가 다를 정도로 비대칭이며, 드림부와 수키와부의 접합방식도 古式의 分割折枝法으로 서로 다르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박물관에 의해 보고된 천북면 물천리가마터 내의 1호 토기가마에서는 신라 최고의 연화문수막새와 평기와가 短脚高杯와 함께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서 신라 최고기와는 단각고배 등을 제작한 신라토기 제작공인에 의해 생산된 것으로 보았으며, 그 시기는 6세기 전반으로 편년하였다. 아울러 이 가마터에서 이십여키로미터 멀리 떨어져 있는 내남면 화곡리가마터에서도 신라초기기와가 제작되며, 신라 最古 수막새의 드림부 문양이 물천리가마터와 다른 점을 기초로 복수의 제작집단에 의해 신라최고기와가 생산된 것으로 보았다. 즉, 신라최고기와는 신라 최대의 토기생산지인 천북면 물천리가마터와 내남면 화곡리가마터의 단각고배 등을 제작했던 토기장인들에 의해 6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이다. 더 나아가 내남면 화곡리가마터 초기기와 제작집단은 인근의 내남면 망성리와요지 출토 ‘習部’ 명류 기와를 기초로 신라 육부 중 습부로 위치 비정한 선행연구에 의지해 습부 소속으로 보았고, 천북 물천리가마터 제작집단은 습부 소속인지 이외의 한지벌부 등의 다른 육부 소속인지는 향후의 과제로 남겨둔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clarify when the Silla rooftiles began to be produced. The ruins where the rooftiles were produced in the early Silla period include Mulcheonri kiln site in Cheonbukmyeon and Hwagokri kiln site in Naenammyeon of Gyeongju. The kilns in these two regions are the largest pottery production sites during the entire Silla period, from the two-tiered mounted dish with opening to the earthenwares with stamped design. In addition, there is Yuktongri rooftile kiln site in Angangeup, dedicated to rooftiles, which was farther away from those kilns, and early Silla rooftiles were also reported here. This study has introduced and reviewed the early Silla rooftiles unearthed at these kilns. As a result, it has been confirmed that the oldest rooftiles of Silla were the so-called Baekje-origin Silla's Old style lotus-design convex roof-end tiles excavated from Mulcheonri and Hwagokri kiln sites, and that the plain tiles were produced by the inexperienced production method which is called the no rooftile-production-mold manufacturing technique that did not use the watong (rooftile production mold). The oldest convex roof-tile of Silla is similar to the pattern of pennon part of the lotus-design convex roof-end tiles which is studied as the founding rooftiles of the Gongju Daetongsa site in Baekje area. However, each connecting plate is asymmetrical enough to have a different size, and the joining method of the parts of pennon and the convex roof tiles are the ancient method of split plate technique, which are also different from each other. According to the report made by the Dongguk University Gyeongju Campus Museum, in the No.1 earthenware kiln in Mulcheonri of Cheonbukmyeon kiln site, the oldest lotus-design convex roof-end tiles and the plain rooftiles were excavated along with the short mounted cup. From this, it was considered that the oldest Silla rooftiles were produced by a Silla pottery maker who produced short mounted cups, etc., and that the period was dated as the first half of the 6th century. In addition, it is considered that early Silla rooftiles were also produced at Hwagokri kiln site in Naenammyeon, which is about twenty kilometers away from this kiln site, and that based on the difference in the pennon part pattern of the oldest Silla convex roof-end tiles, they were produced by the multiple production groups. In other words, Silla's oldest rooftiles were produced in the first half of the 6th century by potters who also made short mounted cups, and so on, in the largest pottery production site in Silla, which were Mulcheonri kiln site in Cheonbukmyeon and Hwagokri kiln site in Naenammyeon. Furthermore, the early rooftile production group of Hwagokri kiln site in Naenammyeon was considered to belong to Seupbu of Silla Six-bu, based on the previous research that determined the location of “Seupbu” rooftiles excavated from nearby Mangseongri rooftile kiln site in Naenammyeon. Whether the production group of Mulcheonri kiln site in Cheonbukmyeon belongs to the Seupbu or other Six-bu, such as the Hanjibeolbu, is left as a future ta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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