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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전반 조지 엘 쇼(George L. Shaw)의 한국독립운동 지원활동과 그 의의 -1920년 11월 석방 이후를 중심으로-

George L. Shawʼs support for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in early 1920s and its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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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George Lewis Shaw)는 중국 安東의 怡隆洋行 내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안동교통사무국을 설치하고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해준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생애와 활동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매우 많다. 따라서 본고는 쇼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한국·일본·영국의 자료를 발굴해 1920년 11월 쇼가 석방된 후 1925년까지 쇼의 행적과 한국독립운동 지원 활동을 분석하였다. 1920년 11월 19일 쇼는 안동으로 돌아와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앞으로도 정의를 위해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적극 원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해 말 쇼는 일본 橫濱·東京을 거쳐 1921년 1월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요인들이 마련한 환영연에 참석해 금색공로장을 받았으며, 안동교통사무국의 재흥 등 장래 독립운동에 관해 논의하였다. 또한 그는 자신을 비방했던 상해 『遠東時報』(Far Eastern Review)의 발행자와 기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을 미국영사관 법정에 청구하였다. 1921년 5월 중순경 안동으로 돌아온 쇼는 김문규를 이륭양행 직원으로 채용해 안동교통사무국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힘썼다. 아울러 쇼는 압록강 입구 대동구 부근 토지를 장기 임대하는 등 사업을 확장시키면서 일본인과 경쟁하였다. 1922년 8월 일제의 김문규 체포로 안동교통사무국이 크게 위축되었음에도, 1923년 2월 중순 쇼는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요인에게 독립운동을 촉구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도모하자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만주지역 독립운동가들을 비호하고 교섭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이에 1923년 초 조선총독부의 사주를 받은 민간인 鈴木이 쇼의 처 후미의 오빠를 매개로 이륭양행을 매수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시도는 쇼의 강력한 거부로 실패하였다. 1925년에 쇼는 자기 소유의 泰隆號와 일본 大連汽船株式会社 済通丸의 충돌사건으로 일본인과 마찰을 빚었다. 쇼는 손해보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일제는 오히려 泰隆號의 선원 중 중국인 무자격자가 있는 약점을 꼬투리 잡아 사건을 무마하려 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대응방식은 1931년 만주침략 이후 쇼에 대한 탄압·축출공작의 전초를 보여준다. 한편 쇼는 석방 후 김문규를 이륭양행 직원으로 채용함으로써 안동교통사무국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 결과 안동교통사무국은 독립운동가의 운송·보호 및 소개, 무기의 보관과 전달, 독립단체들 간의 비밀 통신 및 정보 수집, 각종 임시정부 관련 책자 및 홍보물 전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그러나 1922년 8월 일제가 김문규를 체포했기 때문에, 이륭양행을 거점으로 삼은 안동교통사무국은 실질상 해체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쇼는 이륭양행에 독립운동가들을 은닉해주는 등 한국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도와주었다. 또 1923년 의열단은 국내 거사계획을 추진하면서 이륭양행을 이용했고, 임시정부 요원들도 이륭양행의 선박으로 폭탄 등의 무기를 운반한 뒤 이륭양행을 통해 통의부·정의부 등 독립운동단체들에게 운송하였다. 1924년 초에도 쇼는 통의부에서 요구한 국내 진입용 모젤권총을 구입해주었다. 그 후 1931년 만주침략을 계기로 쇼에 대한 일제의 탄압·축출공작이 전개될 때까지 쇼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쇼는 일제의 철저한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을 운영하는 데 전념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1924년 4월 만기 출옥한 김문규를 다시 이륭양행의 직원으로 고용한 사실, 1925년 5월경 임시정부의 요원으로 이륭양행에 근무했던 김승빈이 모종의 사명을 띠고 서울로 갔던 사실 등으로 미루어, 쇼가 여전히 한국독립운동을 도와주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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