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건물 유형에 따른 적심 연구
The study on Foundation Remains(Jeoksim) according to types of buildings of Gyeongbok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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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복궁에 대한 연구는 건축사·문헌사·미술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와 같은 연구는 현전(現傳)하는 건 물과 기록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음으로 궁궐 전체를 연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양호한 상태로 잔존해 있는 경복궁 건물지 유구, 특히‘적심(積心)’은 이러한 연구의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중요한 고고(考古)학 자료라 할 수 있겠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경복궁의‘적심’에 대하여 분석하여, 형태·규모·재료·축조방식에 따라 그 형식을 분류하고, 이 것이 건물 기초로써 상부 건물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궁궐 건물 유형별 사용된 적심을 검토하고, 시기 별 변천양상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경복궁 건물지 적심은 총 21가지 형식으로 구분되는데, 각 건물 유형에 따라 건물의 기초 즉 적심도 달리 축조 되며, 시기별로도 적심의 축조방식 및 재료 등이 변화하여, 특정 시기에 유행하는 적심의 형식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복궁 적심은 평면 형태에 따라 원형(Ⅰ), 말각방형(Ⅱ), 세장방형(Ⅲ), 방형(Ⅳ), 통적심(Ⅴ)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다시 축조방식과 사용된 재료에 따라 21가지 형식으로 세분된다. 특히 조선전기 14~16세기에는 원형 잡석 적심(Ⅰ-1), 말각방 형 장대석(Ⅱ-1), 말각방형 잡석+와전(Ⅱ-2a) 세 가지 형식의 적심만 축조되다가, 조선후기 19세기에 들어 21가지 분류한 모든 적심이 다양하게 축조된다. 19세기 고종연간 내에서도 연대별로 각기 다른 형식의 적심을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재 료에서 두드러진 차이점이 확인된다. 경복궁을 재건한 고종 2년(1865)~고종 5년(1868)에 축조된 적심 10가지 형식 중 무 려 7가지가 와전편을 섞어 넣은 형식인 반면, 고종 10년(1873)과 고종 13년(1876) 혹은 고종 25년(1888)에는 축조된 5가지 형식 중 3가지가 강회를 섞어 넣은 사질토를 사용한 형식으로 대조를 이룬다. 궁궐 건물은‘주인의 신분과 용도’에 따라 건물의 서열이 정해지고, 건물의 이름 뒤에 가장 중요하고 격이 높은 순서 대로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누(樓), 정(亭) 등의 명칭이 붙어 그 유형이 구분되며, 그 격에 맞추어 건축물 이 축조된다. 이 건물 유형별 사용된 적심을 검토한 결과, 건물의 유형(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누(樓), 정(亭)) 에 따라 그 기초, 즉 적심도 달리 축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 자료의 한계 상‘전’,‘ 당’,‘ 각’,‘ 방’등 일부 건물 유형만 확인되었는데,‘ 전’과‘각’의 경우 장대석으로 축조한 방형 적심(Ⅳ)이,‘ 당’과‘방’의 경우 기와와 잡석을 사용하여 축조한 말각방형 적심(Ⅱ)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기타 건물명을 알 수 없는 경우는 대부분 조선전기 선대(先代) 건물지의 적 심임으로, 조선전기에 원형 잡석 적심(Ⅰ-1)이 많이 축조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주인의 신분이 높고 격이 높은 건물일수록 건축물도 격이 높듯이, 그 기초부, 즉 적심 또한 가장 견고하고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축조한 것으로 추정해 볼수있다. 또한‘당’과‘방’은같은말각방형적심이사용되었지만,‘ 당’은잡석과와전편을주재료로사용한Ⅱ-2a(잡석 +와전편 말각방형 적심)형식이, ‘방’은 Ⅱ-2a형식의 상면에 15~20㎝ 가량 와전편을 깐 Ⅱ-2b(와전편+(잡석+와전편 말각방형 적심)) 형식이 많아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건물 유형별 적심은 시기별로 축조되는 형식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과‘각’의 경우 모두 14~15세기 조선전기에는 Ⅰ-1형식(원형 잡석)의 적심을 축조하다가, 19세기 조선후기에는 다양한 형식의 적심이 축조되는 데, 그 중에서도 특히 방형 적심(Ⅳ)이 많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의 경우 조선후기의 변천양상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고종 4년(1867) 축조된 적심은 잡석과 와전편을 섞어 넣은 형식의 적심이 많이 축조되고, 이후 고종 13년(1876) 혹 은 고종 25년(1888)에는 다른 건물 유형에서 확인되지 않는 강회사질토 및 탄축 적심이라는 독자적인 형식이 사용되었다. 본 연구를 통해 조선전기에 비해 후기에 적심의 다양한 축조방식과 재료가 개발되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이는 당시 궁궐건물 기초 축조 기술 수준의 변화가 있었음을 대변해 준다. 또한 건물 유형별로 사용되는 적심의 형식이 다른 것이 확인되어, 건물의 기초를 축조할 때 미리 계산된 건축 공법을 적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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