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초 순화(淳化)명 청자에 대한 재조명―제작과 전개를 중심으로―
Re-examination of the Celadon with the Inscription of 'Soonhwa (淳化)' in the early Goryeo dynasty
1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 연구는 순화명 청자의 성격, 제작배경과 의미, 위계를 살피고, 제작이 중단된 이후 태묘 의례용 제기의 추이를 제작 및 수급방식의 변화에 주목하여 논하였다. 중국 예서와 제기도는 고려의 제사 공간을 만드는데 일조하였고, 988년 성종은 태묘를 5묘 체제로 삼아 992년 11월에 건립을 마무리하였다. 성종에게 태묘는 국가근본인 효가 구현되는 공간이었고, 태묘의 건립과 제사를 통해 왕위의 정통성을 공표하고자 하였다. 순화명 청자는 이러한 성종의 의지를 담아 992-993년 태묘 의례를 위해 배천 원산리 가마에서 우수한 제작공력으로 제작된 결과물이자, 『삼례도』를 견본으로 제작되고 명문을 개체별로 표기할 만큼 규격화된 공정과 체계적인 제작방식이 적용된 대상이었다. 960년 물장성에서 개칭된 보천은 장인과 진귀품의 보관을 담당하였고, 배천 원산리 가마를 산하에 두어 필요시 장인을 차출하여 순화명 청자를 제작하였다. 993년 이후 순화명 청자의 제작을 비롯해 배천 원산리 가마 역시 운영이 중단되었다. 해당 가마의 운영 중단은 요업상 비효율과 유지의 어려움에 기인하였고, 운영을 중단한 이후 1010년 재차 발발한 거란의 침입에 따른 피해로 왕실의 지원을 받거나 인력의 확보 및 가마 구조의 전환을 통한 재건도 불가능하였다. 1011년 소실된 태묘는 1027년 수리가 마무리되어 의례가 진행되었다. 1029년 태묘 의례용 제기의 확보가 원활히 이행된 배경에는 제기도감의 관할 하에 공물의 형태로 자기제기가 수급되었기에 가능하였다. 992-993년 배천 원산리 가마에서 제작된 순화명 청자는 11세기 이후 용인 서리 및 여주 중암리 일대에서 제작된 백자제기에 태묘 의례용 제기의 역할을 위임하였고, 왕실직속 제작체제의 조달에서 공물 납부방식으로 태묘 의례용 자기제기의 제작과 수급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Abstract
This study sets out to investigate the formative Origin, Production Background, Characteristics, Hierarchy of the Celadon with the Inscription of 'Soonhwa(淳化)' excavated in Hwanghae-do (黃海道) Baechun (白川) Wonsan-ri (圓山里) kiln, to estimate Production and Supply of Imperial Ancestral Temple (太廟) ceremonial earthenware in the 11th century. The ritual space of the Goryeo Dynasty was built on the basis of Yeseo (禮書) and Jaegido (祭器圖) imported from Song dynasty. Sungjong(成宗) set Imperial Ancestral Temple (太廟) as Five Ancestral Temple in 988, started building Imperial Ancestral Temple (太廟) in 989, completed construction in 992. Sungjong (成宗) took Imperial Ancestral Temple (太廟) as space to include filial piety, the prop of the country, and intended to reveal Royal authority and authenticity through Ritual in Imperial Ancestral Temple (太廟). With intention of Sungjong(成宗), the Celadon with the Inscription of 'Soonhwa (淳化)' was produced using Taejoon (太尊) and Doo (豆) of the northern Song dynasty's Samryedo (三禮圖) as a sample for Ritual in Imperial Ancestral Temple (太廟) in 992-993, produced systematically to put together the fabricated parts and to write the inscription 'time-place-use-manufacturer'. Bochun (寶泉) managed master craftsmans and treasure warehouse, the Celadon with the Inscription of 'Soonhwa (淳化)' made in Baechun (白川) Wonsan-ri (圓山里) kiln until 993. Out of operation in Baechun (白川) Wonsan-ri (圓山里) kiln, it was rooted in problem maintaining kiln. In the end, it stopped altogether ending up with less Royal Family's support and the insurance of manpower for regeneration by Kitan's invasion since 1010. Imperial Ancestral Temple (太廟) had been burnt down in 1011, was fixed and opened up Ritual in 1027. According to plan, Jaegidogam (儀禮都監) might procure by tribute Ancestral utensil (儀禮器) of pottery for Ritual in Imperial Ancestral Temple (太廟) in 1029. After the 11th century, the Celadon with the Inscription of 'Soonhwa (淳化)' delegated a role of Ancestral utensil (儀禮器) for Ritual in Imperial Ancestral Temple (太廟) to white porcelain produced in Yongin (龍仁) Seo-ri (西里) and Yeoju (驪州) Joongam-ri (中巖里) kilns.
참고문헌 (75)
- "高麗史", ~
- "高麗史節要", ~
- "大唐開元禮", ~
- "白川趙氏世譜", ~
- "宣和奉使高麗圖經", ~
- "續資治通鑑長編", ~
- "新定三禮圖", ~
- "慵齋叢話", ~
- "朝鮮王朝實錄", ~
- "崔士威墓誌銘", ~
- 강경숙, "韓國陶磁史" (2012), 예경
- 경기도박물관, "京畿道佛蹟資料集" (1999), 경기도박물관
- 경기도박물관, "奉業寺" (2003), 경기도박물관⋅안성시
- 驪州 中岩里 高麗白磁窯址, "경기도박물관", 경기도박물관⋅여주군, ~ (2004)
- 龍仁西里上盤高麗白磁窯址, "경기문화재연구원", 경기문화재연구원⋅용인시⋅용인문화원, ~ (2016)
- 華城 花山洞 遺蹟(본문2), "경기문화재연구원", 경기문화재연구원, ~ (2010)
-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고고연구 해제집1(1986-2000)" (2017), 국립문화재연구소
- 진안 도통리 중평 초기청자요지Ⅲ, "국립전주박물관", 국립전주박물관⋅군산대 박물관⋅진안군, ~ (2019)
- 龍仁 前垈里⋅留雲里 遺蹟, "기호문화재연구원", 기호문화재연구원, ~ (2011)
- 김대식, "고려전기 중앙관제의 성립과 육전제의 영향", 박사, 한국사, pp.2004
- 김보광, "고려 성종․현종대 太祖配享功臣의 선정 과정과 의미", 사학연구, (113), pp.43~82 (2014), 한국사학회
- 김보광, "고려전기 閣門의 역할과 국가의례상 의미", 동방학지, (189), pp.31~57 (2019), 국학연구원[DOI]
- 김봉두, "고려 성종대 政治支配勢力의 지방통치에 대한 認識과 지방통제책", 전통문화연구, 5, pp.62~63 (1997), 조선대 전통문화연구소
- 김세린, "高麗時代 金屬象嵌技法 硏究", 석사, pp.2011
- 김아네스, "고려 전기 태묘의 禘祫 親享과 그 의미", 진단학보, (132), pp.21~56 (2019), 진단학회
- 김영진, "도자기 가마터 발굴보고" (2002), 백산자료원
- 김영진, "조선도자사연구(삼국-고려)" (1995), 사회과학출판사
- 김우성, "고려 전기 태묘 제례의 주기진설과 제주사용", 석사, pp.2017
- 김윤정, "12세기 고려청자에 보이는 宋・金代 定窯 자기의 영향과 의미", 야외고고학, (29), pp.39~70 (2017), (사)한국문화유산협회[DOI]
- 김창겸, "高麗 太祖代 姓貫 賜與와 그 의미", 역사민속학, (30), pp.43~66 (2009), 한국역사민속학회
- 김철웅, "고려시대 太廟와 原廟의 운영", 國史館論叢, 106, pp.3~ (2005), 국사편찬위원회
- 김효진, "용인 서리 상반요지 출토고려백자 제기의 특징과 제작 시기", 미술사학연구, 282(282), pp.5~33 (2014), 한국미술사학회[DOI]
- 김효진, "龍仁 西里 窯址 出土 高麗白磁 祭器 硏究", 석사, pp.2010
- 나영훈, "조선시대 都監의 성립과 변천", 박사, pp.2016
- 문화재대관 보물 토기⋅도자기, "문화재청", 문화재청, ~ (2015)
-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보고서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2014上, "문화재청", 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 (2014)
- 박봉주, "조선시대 국가 祭禮와 籩‧豆의 사용", 동방학지, (159), pp.175~238 (2012), 국학연구원
- 방병선, "오대ㆍ 북송 요주요 청자 제작기술의 혁신과 전파", 강좌미술사, (35), pp.301~330 (2010), 한국불교미술사학회
-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韓國考古學全書 49 (中世編 26) 고구려와 고려 및 리조 도자기가마터와 유물" (2009), 진인진
- 徐聖鎬, "高麗前期 手工業 硏究", 박사, 국사학, pp.1997
- 오영인, "고려 전축요 연구", 석사, 미술사, pp.2009
- 이미지, "북한 『로동신문』에 보도된 고려시대 관련 기사의 현황과 주요 내용", 역사와 실학, (70), pp.117~160 (2019), 역사실학회
- 이민정, "고려 초기 태묘 제례복식 연구", 석사, 의류학, pp.2002
- 이정신, "고려시대 금속수공업과 匠人", 한국중세고고학, (5), pp.103~124 (2019), 한국중세고고학회
- 이정훈, "고려전기 삼성육부제와 각사의 운영", 박사, 사학, pp.2004
- 이종민, "나말여초 청자요업의 개시 여건과 고고학적 산물의 검토-塼築窯와 出土品을 중심으로", 한국중세고고학, 1, pp.72~ (2017), 한국중세고고학회
- 李鍾玟, "南部地域 初期靑磁의 系統과 特徵", 미술사연구, (16), pp.199~228 (2002), 미술사연구회
- 이종민, "韓國 初期靑磁 生産窯址의 分布와 性格", 역사와 담론, (63), pp.151~184 (2012), 호서사학회[DOI]
- 이찬욱, "韓國의 歸化姓氏와 多文化", 다문화콘텐츠연구, (17), pp.253~277 (2014), 문화콘텐츠기술연구원[DOI]
- 이희관, "唐宋時期 越窯 가마의 구조와 그 특징 - 고려시기 청자 가마 구조의 파악을 위한 전제", 미술자료, (92), pp.112~140 (2017), 국립중앙박물관
- 장남원, "高麗時代 京畿地域 窯業의 性格", 고문화, (63), pp.83~108 (2004), 한국대학박물관협회[DOI]
- 장남원, "10~12세기 고려와 遼ㆍ金도자의 교류", 미술사학, 23, pp.171~203 (2009), 한국미술사교육학회
- 조선문화유산연구원,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 발굴조사 자문위원회 자료집", pp.18~ (2021), 조선문화유산연구원
- 조욱진, "고려전기 태묘의 구성과 묘제의 변화", 석사, pp.2021
- 차순철, "「官」字銘 銘文瓦의 使用處 檢討", 경주문화연구, 5, pp.124~129 (2002), 경주대 경주문화연구소
- 하은미,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석사, 미술사학, pp.2010
- 한광휘, "高麗 前期 磁器 生産體系 硏究", 석사, pp.2018
- 인천 문학산 제사유적, "한국고고인류연구소", 한국고고인류연구소⋅인천광역시 남구, ~ (2018)
- 水原 古邑城, "한신대 박물관", 한신대 박물관, ~ (2000)
- 한정수, "고려시대 태조 追慕儀의 양상과 崇拜", 사학연구, (107), pp.1~44 (2012), 한국사학회
- 한정희, "동양미술사" (2007), 미진사
- 썅쿤펑(項坤鵬), "당송시기(唐宋時期) 절강지역(浙江地域) 청자요의 구조와 변천에 대한 고찰", 야외고고학, (20), pp.73~99 (2014), (사)한국문화유산협회[DOI]
- 방산대요, "해강도자미술관", 경기도 시흥시⋅해강도자미술관, 113~ (2001)
- 현종민, "고려 전기 태묘와 그 정치적 의미", 석사, pp.2020
- 龍仁西里 高麗白磁窯 發掘調査報告書Ⅰ, "호암미술관", 호암미술관, ~ (1987)
- 龍仁 西里 高麗白磁窯 發掘報告書Ⅱ, "호암미술관", 호암미술관, ~ (2003)
- 홍대한, "고려시대 공장(工匠) 운영과 성격 고찰 -조탑 공장 운영사례를 중심으로-", 인문사회과학연구, 13(1), pp.213~254 (2012), 인문사회과학연구소[DOI]
- 홍영의, "고려 궁궐내 景靈殿의 구조와 운용", 한국학논총, 37, pp.67~91 (2012), 한국학연구소
- 홍영의, "고려 금속제 佛具類 銘文에 보이는 京‧外 匠人의 제작활동", 한국중세사연구, (46), pp.259~305 (2016), 한국중세사학회
- 北京大学考古学系, "观台磁州窑址" (1997), 文物出版社
- 北京藝術博物館, "中國邢窯" (2012), 中國華僑出版社
- 小山富士夫, "高麗陶磁序說", 世界陶磁全集, 13, pp.220~221 (1956), 河出書房
- 南秀雄, "圓山里遺跡と開城周邊の靑磁資料", 東洋陶磁, pp.105~120 (1994), 東洋陶磁學會
- 張文昌, "制禮以敎天下: 唐宋禮書與國家社會" (2012), 國立臺灣大學出版中心
- 陳芳妹, "宋古器物學的興起與宋仿古銅器", 美術史硏究集刊, 10 (2001), 國立臺灣大學藝術史硏究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