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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암 이민환의 학적 연원과 경세론

A study on the academic origin and administration theory of Ja-am Lee Min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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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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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자암 이민환의 학적 연원과 경세론」을 고찰 한 글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민환은 16∼17세기의 격동기를 살다간 인물로 그의 생애는 명(明)⋅청(淸) 교체라는 동아시아 국제 질서가 재편되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그는 20대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40대 중반에 심하전투(深河戰鬪) 참전과 포로, 50∼60대에 정묘⋅병자호란을 겪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며, 그의 학문적 기반은 퇴계(退溪) 학맥과 닿아 있다. 그는 16세 때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의 문하에 들어가 21세 김성일이 순국할 때까지 출입하였으며, 김성일 사후(死後) 27세 때 겨울 한 철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한 바 있다. 그리고 30대 이후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에게 나아가 학문을 배웠다는 기록을 남겼다. 특히 이민환은 심하전투(深河戰鬪)의 참전과 포로생활에 대한 기록을 일기 형태로 남겼을 뿐만 아니라 후금(後金) 사회의 모습에 대한 자세한 견문록을 남겨 후일을 대비할 수 있는 방책을 제시하였지만, 당시 집권세력인 북인(北人)에 의해 묵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환은 이후에도 국방과 관련된 많은 대책을 조정에 올리거나 기록으로 남겼지만 채택되지 못하고 묵살된 것은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가 남긴 경세론은 「비어육조(備禦六條)」를 비롯해 국방대책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그가 후금의 침략(侵略)을 예견하고 대비책을 제시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이민환의 국방대책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성(城)의 수축(修築)’과 ‘병마(兵馬)의 양성’, ‘정병(精兵)의 선발’, ‘기예(技藝)의 단련’ 등으로, 그 중에 ‘기병(騎兵)의 양성’에 온 힘을 쏟았던 것은 그의 전후에 어느 누구도 제시하지 않았던 선구적인 대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traces the academic origin and administration theory of Ja-am Lee Minhwan. Lee Minhwan lived over the 16th and 17th century, when international order in East Asia was turbulently reorganized while the throne of China was changed from Ming to Qing. In his twenties were Imjin War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Jeongyu War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7). He fought the Simha battle and was taken prisoner in that war. In his fifties and sixties, Jeongmyo War (the Manchu war of 1627) and Byeongja War (the Manchu war of 1636) broke out. What makes his tumultuous life noticeable is his journals on war experience and captivity in Simha battle as well as his circumstantial records on Qing society to be a preparation for the future. Unfortunately, his feat was neglected by Buk In - it means “northern academic clique” in Korean, the ruling clique in that period of history. Though, Ja-am never gave up suggesting numerous policies and kept the records of them, which must have been a huge loss of that time. His administration strategies are primarily focused on national defense policy as suggested in Bieoyukjo (備禦六條, six strategies as preparation) for he foresaw the invasion of Qing and tried to prepare for it. He emphasized repairing the castles, raising the army with horse, organizing the elite special forces unit, and training skills and spirits. In particular, his pioneering insight appears in focusing on raising the army with horse, which was the first around those days.

참고문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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