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大田의 한국인 有志들의 등장과 변화 -1920~1935년 대전의 주요 한국인 ‘公職者’들과 지역사회-
The Korean Local Elites and Changes of local community in Daejon,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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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大田은 1905년 경부선 철도부설과 일본인들의 이주로 만들어진 근대 식민도시 중 하나이다. 훗날 大田邑을 거쳐 大田府로 승격하게 되는 ‘大田面’은 1917년의 ‘指定面’ 지정에서도 알 수 있듯, 일본인들이 인구의 상당수를 점하고 있었다. 당연히 ‘有志’라 불리는 지역의 유력인사들 또한 거의 절대 다수가 일본인들이었다. 그러나 1920년에 도입된 道評議會와 府協議會, 面協議會라는 제한적 자치기구들에 선거를 통해 한국인들이 진출하게 되고, 그들은 자연스레 지역의 유지로 성장하게 된다. 1920년대 초 대전군 전체에서 이들 기구의 공직자로 선출된 인물들은 전통시대의 일반적인 유지층인 지역의 유력사족이나 전직 관료들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비교적 빠르게 새로운 계층의 엘리트들로 교체되었다. 특히 대전면의 경우 전통시대 유지들과는 결이 다른 신흥 엘리트들이 공직에 진출했다. 그들은 주로 상업과 금융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일부는 의사나 司法代書와 같은 근대사회에 등장한 전문직들이었다. 또한 지역출신이 아닌 외지에서 유입된 이주자들이 많았다. 이 같은 한국인 유지들의 등장과 그 성장은 대전이라는 도시의 성격과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대전이라는 도시는 전통적 질서가 아닌, 새로운 식민지 근대의 질서와 개발논리에 의해 움직였고, 부유한 상업도시로의 발전이 일찍부터 지역공동체의 비전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그러한 지역적 환경과 구성원들의 의지가 새로운 유지집단을 만들어낸 것이다.
Abstract
Daejeon was one of the modern colonial cities, built in 1905 by the Kyungbu(京釜) Line railroad and Japanese immigration. In particular,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of Daejeon-myeon(大田面) was Japanese. Naturally, Most of the local elite groups(有志層) that had big influence on the region were Japanese. However, when various local assemblies with limited authority were created in 1920, Koreans advanced through elections, and they also became local elites. In the early 1920s, Those who were elected as assemblyman of the Daejeon-gun(大田郡) were the ruling class of the traditional era, such as former bureaucrats or influential ‘jejisajok’(在地士族, the nobleman in local). However, the place was replaced by a new classes relatively quickly. Especially in the case of Daejeon-myeon, New leaders who were different in character from those of the traditional era appeared early. They were based on commerce and finance. And some of them were professional jobs, such as doctors and judicial scriveners. And most of them were people who migrated from outside, not from the locals. These distinct features also reflects the characteristics of Daejeon. From the beginning Daejeon was not a traditional order, but a new colonial modern order and development logic. The development of a wealthy commercial city was the vision of the local community. As a result, the environment and will of the local community created new local el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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