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통구사신총 연구
A Study of Tonggusasinchong of Kogur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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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통구사신총은 다듬은 巨石을 사용하여 널길 벽, 널방 벽과 천장을 축조한 후기 벽화고분의 하나이다. 통구사신총 벽화는 석면위에 백회를 바르지 않고 직접 그려진 것으로 四神을 주제로 삼고 있다. 벽화 속의 사신은 5세기와는 다른 매우 능숙한 기법으로 화려하게 묘사되었으며 화면 배경으로 중국 남북조시대에 유행한 빠르게 흐르는 구름이 가득 그려졌다. 무덤구조, 벽화 구성 및 내용으로 확인되는 여러 가지 사실들과 이웃한 오회분5호묘 및 오회분4호묘의 구조와 벽화 내용을 비교, 검토할 때 통구사신총이 축조되고 벽화가 제작된 시기는 6세기 전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통구사신총은 6세기에 들어서면서 집안권과 평양권이 미술양식을 비롯한 문화예술적 성향 전반에서 뚜렷이 다른 길을 걷게 되었으며 집안권이 걷게 된 길의 성격과 내용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주요한 유적이다. 중국 남북조와 유목제국 유연을 오간 고구려의 대외사절단에 합류했던 국내성 사람들에 의해 지역사회에 소개된 서방 및 서북방의 문물들은 국내성의 오랜 전통과 습속을 바탕으로 형성된 지역 나름의 문화 해석과 소화 방식을 통해 수용되고 재창조되었다. 6세기에 들어서면서 국내성 지역에는 독자적 미술양식을 형성하려는 흐름이 보다 강해졌는데, 이런 문화적 흐름의 과정이자 결과 가운데 하나가 통구사신총 벽화이다. 통구사신총 벽화에서 특히 눈에 띠는 것은 중국에서 들여온 미술작품을 매개로 고구려 신화체계를 형상화 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복희형 해신, 여와형 달신 및 문명신들이다. 벽화의 天神들은 고구려 신화체계의 형상화가 평양지역에서보다는 국내성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상정하게 한다. 이는 평양천도가 이루어진지 오랜 시간이 흘러 평양을 중심으로 고구려 문화가 재편되었지만 여전히 국내성 일대에서는 국내성을 고구려 천하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내세우려는 의식이 공유되고 유지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통구사신총은 6세기에 들어서면서 5세기 후반 평양문화를 중심으로 통합되고 일원화 되는 경향을 보였던 고구려의 남북문화권 사이에 다시금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많아지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고자 할 때에 역사·문화적 지표의 하나로 자리 매김될 수 있다.
Abstract
Tonggusasinchong is one of the later period mural tomb that used polished megaliths to construct tomb path, main chamber and ceiling. Tonggusasinchong mural’s main theme is the Four Deities which is directly painted on the surface of the stone without lime layer. The Four Deities have been painted with very sophisticated technique that differs from that of 5th century while the background is adorned with rapid torrent of clouds that were in trend in China during the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period. From various facts confirmed through analyses of the tomb structure, mural composition and contents, and from comparison and examination with the neighboring tombs, Ohoebun Tomb No. 5 and No. 4, it is reasonable to say that Tonggusasinchong was built and painted during the first half of 6thcentury. Tonggusasinchong is an important site that shows that from 6thcentury on, Jian and Pyeongyang are aparted in their sociocultural approaches including painting style and how Jian approach differed from that of Pyeongyang in its characteristics and contents. The western and northwestern cultural elements introduced to the region by Gungnae people who were among delegates that were sent to Chinese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and nomadic empire Yen-yen were adopted, analyzed, and recreated under the old tradition of Gungnae. The trend to create an independent art style became stronger in 6th century Gungnae region and Tonggusasinchong is the process and the result of such cultural trend. What catches eye in Tonggusasinchong mural are the Fuxi type sun god and the Nuwe type moon goddess and various deities of civilizations that hints the possibility that they formed the basis of Koguryo myth system through art objects from China as media. The gods of the mural show that the creation of Koguryo myth occurred not in Pyeongyang but Gungnae region. It may be because although the capital had moved to Pyeongyang long time ago, Gungnae people still shared the idea of Gungnae as the center of Koguryo. From such point of view, Tonggusasinchong can work as one of the historical and cultural index when examining why there came to be more differences than similarities between the cultures of north and south Koguryo after 6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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