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필(猥筆)」, 1902-외필논쟁(猥筆論爭)의 시작-
Eopil猥筆, 1902 -The Beginning of Eopil-Debate(猥筆論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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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기정진의 저술인 「외필」은 1878년에 나타났다. 외필논쟁은 1878년부터 1901년까지의 잠복기를 거쳐 1902년 본격화되었다. 그 이후 이 논쟁은 최소한 1941년까지 때로는 지속적으로 때로는 산발적으로 연관된 자료를 생산했다. 이 논쟁의 기점을 1902년부터 잡더라도 대략 40여년의 기간에 걸친 20세기의 전반기에 한국 유학계에는 조선 후기로부터 연속성을 가지는 성리논쟁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은 그 가운데 1878-1902년까지 생산된 자료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1878년에서 1901년 사이에 생산된 14편과 1902년에 생산된 57편의 목록을 제공하고, 이 논쟁의 시작된 1902년도의 사상사적 지형도를 개괄적으로 정리한다. 이를 통해 1902년 외필논쟁의 시작에 이르는 과정에 얽힌 사상사적 동향들을 구별해 낼 수 있다. 이이 성리학의 주리적 재구성을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외필」의 문제의식이 동시대의 화서학파의 사상적 지향성과 어떻게 공명했고, 그것이 영남 노론계와 연재학파 및 전우에게 끼친 영향과 그 반작용으로 나타난 텍스트들의 상호 연관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나타난 최익현이 지은 기정진의 「신도비명」이 현재 세 가지 종류가 남아 있게 된 까닭과 그 내용과 외필논쟁의 상호 연관성이 어떻게 노사학파와 화서학파 대 일부 영남 노론계 유학자 및 연재학파와 전우라는 전선을 그려내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비록 이 글은 각 인물들은 자신들의 학술적 입장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입장을 보여주는 텍스트를 소개하고 정리했지만, 1902년은 이 논쟁 겨우 시작하는 시점이다. 1903년에서 1941년에 이르는 텍스트들의 정리와 그 내용의 개괄 이후에야 외필논쟁은 제대로 된 20세기 한국 성리논쟁의 일부로서 그 전모를 드러낼 것이다.
Abstract
Ki Jeong-jin's writing, "Eopil猥筆" appeared in 1878. The Eopil-debate began in 1902 after a period of incubation from 1878 to 1901. Since then, the debate has produced at least until 1941, sometimes continuously and sporadically associated text. Even if this debate began in 1902,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which lasted about 40 years, there was a continuous Neo-Confucianism debate in the Korean Neo-Confucian community from the late Joseon Dynasty. This article studies texts produced between 1878 and 1902. It provides a list of 14 texts produced between 1878 and 1901 and 57 texts produced in 1902. It outlines the historical and ideological topography of 1902, when the controversy began. Through this, we can distinguish between ideological and historical trends in the process leading to the start of the Eopil debate in 1902. Eopil began with the aim of reconstructing the Neo-Confucianism of Yi yi(李珥) around the concept of Li(理). This sense of problem influenced several contemporary ideological currents, namely Noron-line in Yongnam(嶺南老論係) and Yeonjae school(淵齋學派) and Jeonwu(田愚). The reaction resulted in the interaction of various texts. This article introduces and organizes texts that show different positions depending on their academic and social positions. However, 1902 was only the beginning of this debate. Only after a summary of the texts from 1903 to 1941 and a summary of their contents will the Eopil-debate reveal its full extent as part of a proper 20th-century Korean Neo-Confucianism deb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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