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성리학적 사유의 거울: 전우(田愚)와 외필논쟁(猥筆論爭)
A Weary Mirror of Neo-Confucian Thought: Jeon Woo(田愚) and the Eopil-Debate(猥筆論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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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외필논쟁과 전우 성리학의 상호작용을 탐구한 것이다. 전우의 저술 가운데 외필논쟁과 연관된 27가지 자료를 간추리고 이들을 시기적으로 3단계로 나누어 서술한다. 첫째 시기는 1891년으로 그는 신득구와의 교유을 배경으로 「외필」의 학술적 경향성을 단편적으로 언급했다. 둘째 시기는 1902년에서 1905년에 이른다. 전우는 권봉희에게 자극을 받아 본격적으로 외필논쟁에 참여했고, 가장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외필변」과 「외필후변」이다. 셋째 시기는 1914년에서 1916년에 이른다. 각 시기를 경과하면서 전우의 서술은 단편적인 논평에서, 「외필」의 조목별 비판, 기정진 성리학 일반의 평가, 나아가 이항로 및 이진상과 심설논쟁의 쟁점을 포괄하는 비평으로 확장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일관된 성리학적 판단의 기준은 ‘리무위 기유위’와 ‘리의 주재’라는 발상이었다. 결국 전우의 성리학은 일종의 율곡 정전주의에 기초해서 외필논쟁과 심설논쟁 및 앞선 주리적인 성리학적 경향성에 대한 포괄적 반론으로서 정립되었다. 이런 점에서 전우는 그보다 앞선 세대의 사유를 비춰주는 성리학적 사유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남겨진 질문은 이 거울의 이론적 성격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역사적 성격이다. 이것은 16세기의 이이를 근거로 19세기의 사유를 20세기초에 논쟁했다는 구체성에서 비롯된다. 전우 성리학에 대한 탐구와 토론에서 이 질문의 의미를 숙고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Abstract
This article is a linear exploration of the interaction between the Eopil-Debate(猥筆論爭) and the Jeon Woo(田愚) Neo-Confucianism. His 27 writings related to the Eopil-Debate are summarized and described in three stages in a timely. In 1891, the first period, he discussed the academic trend of Eopil(猥筆) in pieces against the backdrop of his friendship with Shin Deukgu(申得求). The second period ranges from 1902 to 1905. Kwon Bonghee(權鳳熙)'s letter provided him with a problem consciousness, and Jeon Woo participated in a full-fledged the Eopil-Debate and left the most writings. Among them, the most important ones were ‘Eopilbyun(猥筆辨)’ and ‘Eopilhoobyun(猥筆後辨)’. The third period ranges from 1914 to 1916. Throughout each period, it was expanded from fragmentary comments to criticism by article of Eopil(猥筆), general evaluation of Gi Jeongjin(奇正鎭) Neo-Confucianism, and further to criticism that encompasses issues of Lee Hangro(李恒老) and Lee Jinsang(李震相) and the Simseol-Debate(心說論爭). In all of these processes, the consistent criteria for Neo-Confucian judgment were the ideas of 'Li as Muwi(無爲理)', 'Ki as Yuwi(有爲氣)', and 'Li as Presiding'. Based on a kind of Yulgok(栗谷) orthodoxy, he was established as a comprehensive counterargument to the Eopil-Debaten and Simseol- Debate and the Neo-Confucian tendency centered on Li in the previous era. In this respect, Jeon Woo can be said to be a mirror of Neo-Confucian thought that appeared in the early 20th century. The question that emerges here is the historical nature of this mirror. Considering the meaning of this question in his quest for Neo-Confucianism and discussion will have more significance than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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